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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글쓰기 생활의 동반자


글쓰기생각쓰기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윌리엄 진서 (돌베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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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냥 재밌는 책? 아니면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 서점에 가보면 책들로 넘쳐나지만 너무나 많은 양이 진열대에 꽂혀 있다보니 막상 책을 고르려면 한참을 고민해야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가운데서 좋은 책, 아니 정말 좋은 책을 고른다는 일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렇지만 경험적으로 볼 때, 좋은 책, 아니 정말 좋은 책들은 꼭 눈에 들어온다. 마치 책이 '주인님 나 여기 있으니 집어 드시오' 하는 주문을 거는 듯 하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좋은 책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한 재미를 충족시키는 책은 그냥 좋은 책 수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은 그나마 나은 수준이다. 재미와 생각할 거리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두 가지에 더해 책을 읽는 독자의 내면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책, 바로 그것이 정말로 좋은 책이다.

 

이런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정말로 좋은 책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책은 글쓰기 지도서다. 대학에 처음 들어간 새내기,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글로 쓰고 싶어하는, 말하자면 글쓰기광 등등 글 쓰는 법을 알고 싶어 하고 잘쓰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지도하는 글쓰기 분야는 글쓰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무척이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과학에 관한 글쓰기. 저자는 과학과 글쓰기는 전혀 별개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이 아둔한 독자의 무지를 여지 없이 부수어 버린다. 그가 지도하는 과학 글쓰기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한 문장 뒤에 또 다른 한 문장을 놓는 문제라는 점이다. 참으로 명쾌하다. 이 장 뿐만 아니라 모든 장에서 이야기하는 글쓰기 방법은 명쾌하기 그지 없다. 너무나 명쾌해서 저자에게 분노마저 치밀 정도다.

 

그렇다. 이 책 '글쓰기 생각쓰기'의 강점은 바로 이런 명쾌함에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신신당부하는 점은 무엇보다 쉽게 쓰라는 주문이다. 이 주문은 본격적인 글쓰기 방법을 제시하려는 대목 바로 직전에 놓여져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구성이지만 참으로 감탄할만 하다. 어떤 글을 쓰던 쉽게 쓰라, 저자가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다.

 

한 번 찬찬히 생각해보자. 글을 쓰려고 하면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려고 하지 않았나? '홈피에 들어와 오늘 찍은 사진 올려주세요'라고 하면 될 것을 '웹사이트에 접속해 금일 촬영한 사진을 게재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해야 글을 쓰는 것 같지 않았나? 글쓰기에 얽힌 이런 관념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만국 공통 편견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편견부터 깨뜨린다. 만년설과 같았던 고정관념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지금 항간에는 종이매체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일정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종이매체의 몰락이 글쓰기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의 지평은 무한대로 확장됐다. 가만히 되돌아보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인터넷으로 메일을 띠우고 블로그, 카페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펼쳐 놓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을 때면 휴대전화를 통해 친구들과 짤막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비단 개인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다. 회사의 채용 담당자들, 특히 미디어 업계의 채용 담당자들은 블로그와 카페, 트위터 등을 뒤지며 인재 발굴에 열심이고 회사 경영진들은 간결한 문서 작성 및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이 모든 일상이 글쓰기 능력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글쓰기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고객과 돈을 잃어버리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글쓰기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이들은 그닥 많지 않다. 짤막한 단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온갖 비속어들이 난무한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들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 능력은 다른 게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글쓰기는 '종이 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 종이가 지금은 블로그, 혹은 휴대전화 메시지 작성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또 하나, 저자는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한다. 지금처럼 명료한 생각을 요하는 시기도 없을 것이다. 휴대전화 단문 메시지는 80kb, 트위터는 140자 안팎이다. 이 제한된 공간에서 메시지를 전하려면 먼저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어렵다. 메시지 작성창에 깜빡이고 있는 커서를 보고 있노라면 공포마저 느낄 정도다. 이 점, 저자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실제 저자도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너무 주눅들 필요 없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점만 인정하자. 이 어려움만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 자연 생각은 명료해질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이 책을 읽고난 뒤 '글쓰기'에 경외감을 갖고 접근하게 됐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 윌리엄 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