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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향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권면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는 기관이다. 세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의 그룹들이 지배한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들을 귀하게 여긴다.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히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세상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주님의 몸이라고 자처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하느님 나라와는 거리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니 하느님 나라라기보다 세상 논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는 귀한 대접을 받고 정말로 귀하게 섬겨져야 할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은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기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애쓰고 힘쓰는 교회가 있고 교역자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교회와 교역자 보다 세속에 물든 교회와 교역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데 있다. 한국 교회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남양주의 정언향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권영진 목사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그의 일침이 담겨져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저서 '진정 회개할 곳은 교회다'이다. 이 책은 딴지일보에 기고한 글을 묶은 것으로 한국 교회의 슬픈 자화상(1부), 한국 교회 왜 이렇게 되었나?(2부) 다음 세대의 한국교회를 위한 조언(3부)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 혹은 군복무 시절, 교회 문턱을 기웃거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는 신자는 물론, 이렇게 과거 한 때 교회문턱을 넘나들었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교회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꼬집어 이야기 한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려운 신학이론이나 사회학 이론을 끌어 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의 고질병과 같은 관행, 이를 테면 건축헌금과 십일조 헌금의 과도한 강요, 극우논리를 대변하는 교회의 실상, 너무도 자본주의에 물든 교회 현실 등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무차별적으로 교회의 어두운 부분만 들추어내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기독교의 기본 경전인 성서를 통해 한국 교회에 만연된 관행이 과연 성서적으로 옳은 것인지, 그리고 현재 한국 교회가 당면한 문제의 대안을 성서를 통해 발견하려고 모색한다. 한 마디로 누구나 공감하는 교회의 현안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기독교 본연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는 귀한 결실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가 새로운 종교로 변질돼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우선 현재 미국 교회가 성서적인 믿음 보다 신비주의에 입각한 종교적 체험과 우주적 힘에 대한 관심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론다 번의 '시크릿', 그리고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서 역설하는 '믿음의 힘에 대한 믿음', 세속적 성공주의의 메시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미국 교회의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미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제의적 사조들이 무분별하게 흘러 들어오고 있음을 꼬집기 위함이다. 미국교회는 이미 하나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갖췄고, 한국교회는 이런 미국교회를 추종하면서 점점 성서의 하느님과 결별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레이크 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잘되는 나'는 현재 미국교회의 단적인 표상입니다. 미국교회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냐는 실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은 뒷전이고 '믿음'이 중요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한국교회의 지향점이자 궁극적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 권영진, '진정 회개할 곳은 교회다' 중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 그리고 그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와 신도들의 잘못을 들추어 내면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 이유는 하나같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신도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새로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믿음 약한 자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겠냐는 말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논리로 시정되어야 할 교회와 목회자의 비리들이 가려졌다. 가려진 비리는 언제고 썩은 냄새를 풍기는 법이다.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유난히 교회,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에서 앞 다투어 비리가 불거져 나왔다. 목회자들끼리의 난투극, 원로 목사 가족의 교회 소유 신문사 경영권 장악 움직임, 젊은이 목회로 성공한 목회자의 여성도 성추행, 교회건축 과정에서 드러난 관계당국의 특혜시비, 그리고 최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기독교 극우정당 창당 움직임.... 이 모든 일들이 주님의 몸이라는 교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잘못이 있으면 드러나야 한다. 잘못이 드러나는 과정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도려내져야 할 잘못은 그대로 남아 곪아 터져 또 다른 병폐를 부른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고통스런 치유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계 안팎에서 이 책과 저자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교회의 치부에 매스를 들이대려는 노력을 폄하하는 교회의 현실은 여전히 교회가 큰 착각에 빠져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자인 권영진 목사의 말이다.
"핍박이요? 많이 받았습니다. 핍박은 무엇보다 믿지 않는 자에게서 보다 믿는 자에게서 많이 왔었어요. 그러나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함으로써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덕이 안된다고 허물을 덮어주는 일이 능사는 아닙니다. 잘못이 일단 드러나야 하고 이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와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써 죄의 결과를 보여줬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죄를 용서하셨어요.
한국 교회는 착각에 빠져 있어요. 교회 안에서 잘못이 드러나면 덮는 것이 선한 일인 줄로 알고 있지요. '덕'이 안 된다는 이유로.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의 허물을 들추는 것이 마귀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게 한국 교회입니다."
권영진 목사의 말 대로 교회는 큰 착각에 빠져 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바깥에서도 교회의 진정어린 회개와 거듭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꿈쩍도 안한다. 오히려 회개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은 음미하면 할수록 의미심장하다.
'진정 회개할 곳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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