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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케빈과 휘트니의 인생 쌍곡선


* 영화 '보디가드' OST 앨범

휘트니 휴스턴이 지난 11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아직까지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득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떠오른다. 그는 1992년 '보디가드'에 출연해 휘트니 휴스턴과 연기 호흡을 맞췄던 적이 있다. 케빈 코스트너가 떠오른 게 단지 그가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라서가 아니다. 그 역시 휘트니 휴스턴만큼이나 심한 부침을 겪었기 때문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처음 존재를 알린 시기는 1980년대 후반. 1988년 '노 웨이 아웃'과 1989년 '언터쳐블'에 출연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언터쳐블'에선 명배우 숀 코네리와 연기호흡을 맞추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케빈 코스트너는 이후 '리벤지', '꿈의 구장' 등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 나가다가 1990년 '늑대와 춤을'로 성공을 거머쥔다. 그는 이 영화에서 주연인 존 던바 역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맡아 사라져 가는 서부와 인디언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첫 번째 감독 연출작인 '늑대와 춤을'은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고, 케빈 코스트너는 비평가들과 관객으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보디가드'에 출연했던 1992년은 그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었을 시점이다. 파트너인 휘트니 휴스턴도 'Saving all my Love for you', 'The Greatest Love of all'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승승장구하던 케빈 코스트너의 연기 인생은 1995년 갑작스런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워터월드'가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제작비가 무색하게 전체적인 구성이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다. 그는 1997년 '포스트 맨'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허사였다. 전작인 '워터월드'처럼 의욕에 압도된 흔적이 역력했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함량 미달이었다. 

두 슈퍼스타의 예기치 못한 추락

이후 케빈 코스트너는 좀처럼 재기하지 못했다. '병 속에 담긴 편지', 'D-13' 등이 주목 받았을 뿐,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케빈 코스트너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시기, 톰 크루즈는 한갓 청춘스타에 불과했다. 그러나 케빈이 슬럼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반면 톰은 중견연기자로 성장해 나갔다.

우연의 일치일까? 휘트니 휴스턴 역시 보디가드를 정점으로 끝없는 추락을 맛봤다. 1992년 랩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이 파멸의 시작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비 브라운과의 불화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휘트니 휴스턴이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술과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이어졌다. 술과 마약, 약물에 쪄들어 파멸해 가는 팝의 디바는 파파라치들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2009년 2월 6번째 정규 앨범 'I Look To You'를 발매하고 재기의 날개짓을 쳤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끝내 2월 11일 팬들의 결을 영원히 떠나갔다. 

인생은 희비쌍곡선이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케빈 코스트너는 연이은 흥행실패로 끝 모를 슬럼프에 빠졌고, 휘트니 휴스턴은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술과 마약에 쪄들다 밤 하늘의 별처럼 스러져 갔다. 어느 누가 두 사람의 불행을 예상했었을까? 

휘트니, 늘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케빈,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