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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한(恨)민족, 슬픈 아일랜드


한민족과 아일랜드는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한민족이 수세기 동안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면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압제에서 신음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민족과 아일랜드인들은 불굴의 투쟁정신을 발휘, 외세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자주성을 잃지 않았다.


또 한민족이 고유의 말과 글을 창조, 발전 시켰다면 아일랜드인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음에도 아일랜드의 토착 언어인 게일어를 유지, 계승시켰다. 아일랜드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너던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등 걸출한 문인(文人)들을 배출, 영어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기까지 했다.


한민족과 아일랜드의 닮은꼴은 현대 정치사에서도 도드라지게 부각된다. 한민족은 일제의 야수적인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아일랜드는 불굴의 투쟁 끝에 마침내 1922년 英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민족이 둘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맛봤듯 아일랜드의 독립 역시 미완에 그치고 피를 나눈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봉착한다.


강인함, 불굴의 투쟁정신, 그리고 슬픔.... 한민족과 아일랜드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정서다.




-. 마이클 콜린스


* 감독 : 닐 조던(1996)
* 주연 : 라이엄 니슨, 알란 리크만, 줄리아 로버츠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 마이클 콜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연출은 아일랜드 출신의 감독 닐 조던이 맡았다.


"우리들의 유일한 무기는 거부(refusal)다"고 외치며 대영제국의 압제에 온 몸으로 맞선 마이클 콜린스 - 그의 강경투쟁 노선은 대영제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지만 여전히 아일랜드를 英 연방에 귀속시키려는 영국측의 책략, 그리고 동지이자 정적이었던 에이먼 드 발레라와의 노선차이로 인해 결국 순교자의 길을 걷고야 만다.


강경투쟁으로 대영제국에 맞섰던 마이클 콜린스와 미국과의 외교를 통해 아일랜드 독립을 쟁취하려는 에이먼 드 발레라의 노선대립은 항일 무장투쟁 노선을 견지했던 백범 김구와 미국 박사 제1호로 對美 외교에 사활을 걸었던 이승만 사이의 애증과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감독 : 켄 로치(2006)
* 주연 : 킬리언 머피


이 시대 최고의 거장 켄 로치에게 칸 영화제 대상을 안겨준 작품. 의사 지망생 데이미언. 그는 어린 사촌동생 미하엘이 영국군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만으로 영국군에게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자 독립투사로 변신한다. 그러나 독립투쟁 과정에서 정통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자신과 자본가와 결탁을 모색하는 형 테디와 조금씩 조금씩 갈등을 드러낸다.


이 둘의 갈등은 1922년 런던 조약이 체결되자 극에 달하고 급기야 동생과 형은 적으로 만나게 된다. 닐 조던의 <마이클 콜린스>가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두 영웅의 갈등을 그렸다면 켄 로치는 아일랜드의 민초들이 겪는 갈등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결말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 아버지의 이름으로


* 감독 : 짐 쉐리단(1993)
* 주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댄 포슬스웨이트, 엠마 톰슨


아일랜드의 한량 청년 제라르 콘론은 무작정 런던으로 건너가 하릴 없이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 폭탄 테러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다. 아들이 걱정돼 런던으로 건너온 아버지 쥬세페도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아들과 같이 감옥행을 선택한다.


처음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라르, 그러나 수형생활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제라드는 또 폭력만이 정의는 아님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된다. 수감생활을 통해 철 없던 철부지 청년 제라르 콘론은 차츰 투사로 변신해 나간다. 한편 제라르, 쥬세페 부자를 변호하던 피어스 변호사는 영국 경찰당국이 이들 부자에게 터무니 없는 혐의를 씌워 테러범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다.


영국 경찰과 사법당국의 증거조작과 피의자에 대한 능수능란한 공갈협박은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 연출은 아일랜드 출신 짐 쉐리단이 맡았다.





-. 블러디 선데이


* 감독 : 폴 그린그래스(2002)


1992년 런던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실질적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통치 하에 놓여 있다. 여전히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또 여전히 2등 국민 취급을 당하는 북아일랜드 민중들, 그들은 평등권을 주창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북아일랜드의 동요를 원치 않는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민중들의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수부대를 투입, 진압에 나서는데.... 시위 진압에 나선 영국군은 시위대에 총탄을 발사하곤 그 책임을 시위대에 떠넘긴다. 영국군의 파렴치한 행동에 격분한 아일랜드 민중들은 속속 IRA의 무장투쟁 노선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영국 여왕에게 훈장까지 받았던 시위진압 부대 지휘관들, 그들의 모습에서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유린하고 급기야 정권까지 집어 삼켰던 그때 그 군인들의 면면이 오버랩된다. 연출자인 아일랜드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언론인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 색채가 물씬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