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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마더] 우리 시대의 '엄마' 김혜자




마더] 우리 시대의 '엄마' 김혜자
 

넓게 펼쳐진 억새밭, 푸른 옷의 여인이 억새를 헤치고 어디론가로 향한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여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서 있더니 무엇인가에 홀린 듯 춤을 춘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으로 제62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 한 시선'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영화 '마더'의 오프닝신이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추는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이 파격적인 장면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47년 차 중견배우이며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으로 각인돼 있는 배우 김혜자다. 김혜자에게 '어머니', 아니 '엄마'라는 인상을 각인시켜준 계기는 문화방송(MBC)에서 23년간 방영됐던 '전원일기'에 출연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김회장 댁 맏며느리로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남편인 김회장과 아들, 손자, 손녀들을 돌봐주는 김혜자의 이미지는 우리네 보통 '엄마'들의 삶의 축약도 그 자체였다. 김혜자는 연기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엄마였다.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에서 1991년 1월부터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국내 태백 폐광촌을 비롯한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라오스, 베트남, 르완다, 북한, 중국 단동 조선족 마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케냐, 우간다, 인도, 아프가니스탄,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파키스탄 등을 방문해 소외되고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가 돼주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또 2004년에는 전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10년의 기록을 담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 향후 10년간의 인세 전액을 월드비전에 기증하기로 했으며, 현재까지의 인세는 북한 용천 긴급구호와 태백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공부방을 세우는데 쓰여 졌다.


지난 5월에는 영화 '마더' 촬영으로 인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음에도 월드비전이 서울시 결식아동을 지원하기 위해 주최한 '사랑의 동전밭' 행사에 참석해 사랑을 전하는데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연기한 엄마는 이전까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너무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더'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바보천치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엄마가 직접 발 벗고 나선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는 담배를 피워 무는 한편, 폭탄주를 거침없이 들이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들의 누명을 벗겨줄 단서를 찾기 위해 동네 한량인 진태를 고용, 가혹행위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 모든 행동이 아들을 구하기 위한 애끓는 모정이기에 한편으론 이해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정이 이토록 무서울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젓게 하기도 한다.

연출자인 봉준호 감독은 이전까지 김혜자라는 배우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산산이 부셔버리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김혜자도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일깨웠다"면서 자신의 연기변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섰다. 김혜자의 연기변신은 외국에서도 인정 받아 올해 1월엔 미국 LA영화비평가 협회(LAFCA)가 뽑은 최고의 여배우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혜자는 우리 모두의 '엄마'다. 영화 <마더>는 또 다른 범인이 검거되고, 그래서 아들이 풀려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극중에서 김혜자는 진범의 얼굴을 보기 위해 교도소로 찾아간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던 탓이었을까? 면회장에서 엄마는 하염없는 눈물을 뿌린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엄마의 연약함을 본다. 47년 연기 인생을 통해 배우 김혜자가 다져온 '엄마'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배우 김혜자는 한 명의 배우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엄마'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