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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영화 vs 사진]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버지의 깃발'



* 조 로젠탈 作, 수리바치 산에서의 성조기 게양


태평양 전쟁 막바지 미국은 이오지마까지 육박해 왔다. 이오지마는 일본 본토 공략의 발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오지마 상륙 3일 후 미 해병대 대원들은 이오지마의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았다. AP 통신 사진기자인 조 로젠탈은 이 장면을 찍어 본국에 타전했다. 


이 사진은 미국 여론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미국인들은 수년째 계속되던 전쟁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전해진 로젠탈의 사진은  미국이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음을 알렸다. 여론의 흐름이 행여 전쟁수행에 불리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미국 정부에게 이 사진은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이 사진에 힘입어 미국 정부는 더욱더 자신 있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됐고 국민들에게 전쟁을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돈을 손쉽게 긁어모을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진 속에 숨겨진 뒷이야기들을 더듬어간다. 그 영화가 바로 '아버지의 깃발'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본국으로 귀환해 영웅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고 미국 정부의 영웅 만들기로 인해 더더욱 힘든 인생을 살아야 했음을 보여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들의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의 궤적을 찬찬히 쫓아간다. 그리곤 나지막한 어조로 호소한다. 그들을 영웅이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 기억해줄 것을....


사진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로버트 카파가 찍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을 보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 신을 구상했으며,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은 베트남전 종군기자 래리 버로우즈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깃발'은 위의 두 작품과는 달리 사진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조 로젠탈의 음성으로 전달되는 회고는 사진의 정치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이제 적절한 사진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패배로 이끌 수도 있게 되었어. 


사진은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실은 사진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은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취사선택된다. 이런 속성은 사실성을 모토로 하는 사진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