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필버그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영화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흥행의 귀재들이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는 두 사람의 황금기였다. 관객 동원을 목표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초대형 오락 영화, 즉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주인공도 바로 이들이다. 2월을 맞아 한 사람은 신작으로, 다른 한 사람은 기존 작품을 3D버전으로 리메이크해 관객들을 찾았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거장들이지만, 세월의 무게는 피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신작 '워 호스(War Horse)'를 직접 연출했고, 조지 루카스는 1999년작 '스타워즈 3 : 보이지 않는 위험'을 3D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두 작품은 국내에 같은 날 개봉했다.
'워 호스'는 말인 조이와 시골청년 앨버트가 나누는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연출자인 스필버그는 인간 보다 말인 조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 데본에서 태어난 조이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건 앨버트의 아버지인 테드. 조이를 본 순간 매력에 사로잡힌 테드는 웃돈을 주고 조이를 사들인다.
조이를 조련하는 몫은 아들인 앨버트의 몫이다. 앨버트는 조이를 정성스레 키우면서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렇지만 유럽대륙에 몰아닥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둘은 이별을 고한다. 조이는 군마로 징집돼 전장에 투입된다. 처음엔 영국군 장교를 주인으로 모시다가 독일군의 포로로 잡힌다. 포로생활은 말에게도 고되기만 하다. 조이의 임무는 무거운 대포를 끄는 일이다. 혹 부상이라도 당하면 곧장 죽음이다. 그럼에도 조이는 고된 임무를 자처한다.
스필버그는 군마 조이가 겪는 기구한 역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극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실제 살아 있는 말을 동원한 것이 무척 돋보인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전투신은 박진감 넘친다.
'워 호스'는 '쉰들러 리스트(1993)',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이어 스필버그가 연출한 세 번째 전쟁 휴먼드라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에서 보여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현장감은 신작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특히 참호장면은 전문가들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당시를 완벽히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스필버그와 루카스, 나란히 신작 발표
* 워 호스
스필버그의 '워 호스'가 휴먼 드라마라면 루카스의 '스타워즈 3 : 보이지 않는 위험 - 3D'는 현란한 영상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사실 루카스는 1977년작 '스타워즈 4 - 새로운 희망'으로 SF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해낸 주인공이다. 그는 스타워즈의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특수효과를 전담하는 스튜디오를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인더스트리얼 라이츠 & 매직(ILM)'이다. ILM은 영화산업에 컴퓨터 기술을 응용한 특수효과를 도입해 영화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ILM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시작으로 'ET',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포레스트 검프',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주라기 공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에서 현란한 디지털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루카스는 3D기술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눈속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3D영화에서 사물이 관객의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편법은 좋아하지 않는다. 화면과 관객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밝힐 정도다. 루카스의 지론은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예술적 감성이 먼저라는 것이다.
또한 "3D와 3D 전환은 예술가가 나서야 하는 예술적인 영역이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3D작업에는 물체가 화면의 어디에 어울리는 지 아는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아주 미묘하지만 중요한 문제다"고 강조한다.
루카스의 완고한 입장은 제임스 카메론과 로버트 저메키스의 제안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간다. 특히 '아바타'로 3D영화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제임스 카메론의 적극적인 권유가 입장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스타워즈 3 : 보이지 않는 위험'의 3D버전은 그래서 탄생하게 됐다. 3D로 구현된 자동차 경주장면과 제다이 전사들의 광선검 격투 장면은 일품이다.
흥행귀재도 피해가지 못한 세월의 무게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야심찬 기획으로 신작을 내놓았지만, 세월의 무게감이 그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공들인 만큼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몇 겹의 에피소드가 엮이는 이야기의 흐름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앨버트와 조이가 재회하는 장면은 감동을 억지로 짜내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한 인상마저 든다. 화면을 저녁노을로 뒤덮은 라스트신은 서사적 동화의 결말로선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많은 영화에서 즐겨 등장하는 장면이어서 진부하기만 하다.
이 영화는 제84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촬영상, 미술상 등 총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아쉽게도 수상엔 실패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웅장한 스케일을 갖춘 휴먼 드라마에 후한 점수를 준데 비해 인종간 갈등, 권력기관의 음모 등 사회적 현안을 다룬 작품들은 철저하게 외면해 왔다. 그래서 숱한 거장들과 명작들이 아카데미와 전혀 인연을 맺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심사위원 대부분이 보수성향의 인물로 채워져 있는 탓이다.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아카데미의 성향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쉰들러의 리스트'로 작품상과 '라이언일병 구하기'로 감독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스필버그가 다시 한 번 아카데미에 욕심을 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3 : 보이지 않는 위험' 3D 리메이크 버전도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1977년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은 영상혁명을 이룬 불후의 SF걸작이다. 이에 비해 '스타워즈 3 : 보이지 않는 위험'은 관객들과 비평가들 모두에게서 혹평을 면치 못했다.
관객들은 이미 시각효과에 익숙해 있었고, 선과 악의 대립으로 짜인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신세대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1세기의 SF영화 마니아들은 단순한 이야기 보다는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에 더 열광했다.
3D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었어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후배인 카메론과 저메키스의 권유를 받아 들여 신기술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영상은 보기 힘들다. 3D 영화에서 흔한 물체가 화면을 뚫고 나오는 효과보다는 기존의 그림에 입체감을 더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감흥을 느끼게 할 만한 요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7080세대의 우상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ET', '죠스', '레이더스', '스타워즈' 등의 영화로 70,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관객들에겐 많은 추억을 선사준 바 있다. 1980년대 최고 흥행작 10편 가운데 7편이 두 사람의 작품일 정도다.
90년대로 접어들어서면서 스필버그는 '아미스타드', '뮌헨', 'A.I' 등 휴먼 드라마를 내놓으면서 오락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루카스 역시 ILM을 통해 영상효과의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제임스 카메론이 설립한 디지털 도메인, 그리고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에니매이션 스튜디오 픽사도 ILM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음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선 두 사람 역시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이 전성기를 누리던 80년대는 선과 악의 경계선이 분명했었고, 국민들은 정부를 무한히 신뢰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선과 악의 경계선이 모호해졌고, 권력기관은 음모의 온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시기다. 전세계적인 경제불황 탓에 연인들은 한가로이 로맨스를 즐길 여유가 없어졌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외부세력의 테러 위협으로 인해 바싹 긴장하는 눈치다. 선과 악의 대립, 권선징악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분명 관객들의 몫이다. 하지만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시대가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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