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돌연변이에 비친 격동의 한 시대
엑스맨 시리즈는 늘 색다른 감흥을 전해준다. 사비에르 교수를 수장으로 그와 대척점에 선 매그니토, 울버린, 스톰, 진, 싸이클롭, 미스틱 등등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 매력적이다. 또 이 캐릭터들이 각자 소유한 특별한 능력을 결정적 국면에 발휘해 위기의 순간을 헤쳐 나가는 대목은 언제나 인상적이다.
엑스맨 시리즈가 던지는 문제의식도 무척 심오하다. 엑스맨은 인류와 '비범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의 관계를 다룬다. 인류는 돌연변이의 존재를 두려워해 말살을 시도하거나, 돌연변이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한다. 이에 맞서 돌연변이들은 인간 존재에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거나, 역으로 인류와 공존을 모색한다. 인류와 돌연변이들 사이의 관계의 고리가 날줄과 씨줄처럼 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엔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철학의 오랜 주제가 엿보인다.
<킥 애스>의 매튜 본이 연출한 새로운 엑스맨 시리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역시 엑스맨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한다. 이 작품은 사비에르와 매그니토의 젊은 날을 다룬 프리퀄로 엑스맨 1편과 2편을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사비에르는 엑스맨의 정신적인 지주다. 사비에르는 뛰어난 염력(念力)의 소유자로 인류와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한다. 그의 대척점엔 매그니토가 서 있다. 매그니토는 사비에르의 노선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면서도 그와 묘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사비에르와 매그니토의 유대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나가는지를 되짚어 보여준다. 이전 시리즈에서 비쳐지는 사비에르 교수의 이미지는 흡사 선승을 방불케 하는 온화함으로 돌연변이는 물론 인류 전체를 감싼다. 그렇지만 젊은 날의 사비에르는 공부벌레인 동시에 술도 제법 즐기고,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슬쩍 작업도 걸어보는 '끼' 넘치는 젊은이다.
반면 매그니토의 유년 시절은 암울하기만 하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겪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은 존재의 밑바닥에 똬리를 튼 분노를 자극한다. 매그니토는 그 분노로 인해 초능력을 갖게 되고 이 초능력을 이용해 무차별적인 복수에 나선다.
젊은 날의 사비에르는 제임스 맥어보이가, 그리고 매그니토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맡아 연기대결을 펼친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신선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로 전형적인 엄친아(?)인 젊은 날의 사비에르역을 탁월하게 소화해 낸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풋풋한 이미지는 노년의 사비에르 교수에게 풍기는 근엄한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오히려 더 신선해 보인다. 마이클 패스벤더 역시 매그니토의 캐릭터가 가진 음울한 이미지를 잘 표현해 낸다. 수용소에서 자신에게 끔찍한 기억을 안겼던 세바스챤 쇼에게 복수하는 대목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대배우 케빈 베이컨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케빈 베이컨은 특유의 악역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케빈 베이컨이 맡은 세바스챤 쇼 박사는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악당. 케빈 베이컨은 예의 그만의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세바스챤 쇼 박사의 역할을 연기해 낸다. 또 울버린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휴 잭맨도 깜짝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시대적 배경은 미-소 핵전쟁 위기가 엄습하던 1962년이다. 엑스맨이 처음 세상에 선보인 때는 쿠바 미사일 위기 이듬해인 1963년. 이 해는 위기를 넘긴 케네디 대통령이 베트남에 1만 6천의 군대를 보낸 해였고, 다음 해인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과 전면전쟁을 벌였다. 미국 국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들끓었고,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를 필두로 하는 흑인민권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격동의 한 시대, 그것도 엑스맨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엑스맨의 정신적인 지주인 사비에르와 매그니토, 그리고 엑스맨이 설파하는 사회철학은 바로 1960년대의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비에르는 온건주의자인 마틴 루터 킹을, 매그니토는 흑인 권력에 의한 흑인 국가건설을 외쳤던 말콤 X를 각각 모델로 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통해 지난 날 격동의 한 시대를 되새겨 보는 것도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재미다.
'Cine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위기에서 빛나는 기자 정신 (0) | 2012.04.08 |
---|---|
부러진화살] 부러진 화살, 부러진 권위 (0) | 2012.01.20 |
프로스트 vs 닉슨] 세상 권력자들에게 던지는 뼈아픈 전언 (2) | 2011.09.22 |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나의 소중한.... (0) | 2011.09.22 |
고쿠리코 언덕에서] 가을 빛깔 가득한 아름다운 수채화 (0) | 201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