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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은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연출하는 현란함과는 거리가 있다. 현란하기보다 오히려 투박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렇지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지브리가 수작업을 고집하는 탓이다. 신작 <고쿠리쿠 언덕에서>의 배경인 1963년 요코하마도 온기 가득하기만 하다. 두 주인공 슌과 우미의 사랑 이야기는 따사로움 가득한 화면 속에서 아름답게 빛난다.
1963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 준비에 한창이다. 이야기의 무대가 된 항구 도시 요코하마가 개발되기 직전 간직했던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 그리고 도쿄의 60년대 뒷골목을 들여다보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정교하게 재현된 장면들에서 장인의 손길을 느낀다. 그렇지만 두 주인공 슌과 우미의 부친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정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63년의 일본은 패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던 시기, 또 올림픽을 맞아 개발 열풍이 불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미와 슌이 다니던 학교의 유서 깊은 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텡'도 철거 위기에 몰린다. 개발 열풍이 불던 시기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카르티에 라텡 철거 지지 여론이 우세하다. 학생회장인 슌은 이런 분위기에 맞서 당당히 반대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슌의 외침은 개발만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에 꽤 의미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낡았다고 철거하는 건 기억을 지우는 일이야 !
우미는 이런 슌의 모습에 반해 사랑을 키워 나간다. <고쿠리코 언덕에서>의 이야기 소재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다. 출생의 비밀을 먼저 안 슌은 우미와 거리를 두려 한다. 우미는 슌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출생의 비밀로 인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가슴아파한다.
우미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사랑의 감정, 우미는 당찬 어조로 슌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가슴 시린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 우미는 성장해 나간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한국식 막장 드라마로 오해하는 건 금물이다. 이야기의 끄트머리, 슌과 우미의 출생의 비밀은 오해로 밝혀지고 둘 사이엔 애틋한 감정이 흐른다. 단,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호흡이 길어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슌과 우미의 애틋한 사랑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나간다. 엔딩에 흐르는 주제곡 '이별의 여름'도 애틋함을 더한다.
<고쿠리코 언덕에서>는 어린이 보다는 어른, 특히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에게 건네주고픈 가을 빛깔 가득한 수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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