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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영화가의 화제는 단연 '부러진 화살'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월19일 발표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결과에 따르면, 개봉 당일인 18일 하루 관객 3만203명을 모았다. 헐리웃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4만 6,136명), 황정민·엄정화 주연의 ‘댄싱퀸’(4만 5,779명)에 이어 3위로 출발했다. 경쟁작인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2만 5,752명), 김명민 주연의 ‘페이스메이커’(2만 2,364명)을 여유있게 제쳤다.
부러진 화살의 개봉관은 전국을 통틀어 245개. 제작비도 고작 15억원에 불과하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경쟁작들이 400개관 안팎에서 상영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선전이 아닐 수 없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몰이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도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전국 상영관을 한눈에 정리한 도표가 올라오기도 했다. 큰 돈을 들인 것도 아니고,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스타를 기용한 것도 아닌 영화가 이토록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의 재미와 연기력이 강점
'부러진 화살'의 첫 번째 강점은 바로 재미다. 정말 재밌다.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지만, 영화가 주는 유쾌함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 영화는 법을 소재로 한 법정 드라마다. 법정 드라마는 치열한 법리다툼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마련이어서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법정 드라마 특유의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쾌함을 곁들인다. 이야기 중간중간 주인공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조롱조의 대사는 맛깔스럽다.
주연을 맡은 안성기와 특별출연한 문성근의 연기대결도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안성기는 꼼꼼한 원칙주의자인 김경호 교수 역할을, 문성근은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신재열 판사역할을 맡아 연기대결을 펼친다. 영화 속 김교수는 법전을 끼고 다니면서 재판부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법에 근거에 재판부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판부를 고발하기까지 한다. 김교수의 까탈스러움에 변호인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사법부는 신재열 판사를 기용해 그에 맞선다. 신 판사는 법조계에서도 알아주는 원칙주의자다. 김 교수의 정교하고 집요한 공세를 하나하나 무력화시켜 나간다.
이렇듯 김경호 교수와 신재열 판사의 캐릭터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상극의 캐릭터가 충돌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묘미다. 그리고 두 배우는 이런 묘미를 선사해준다. 사실 두 배우는 2006년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서도 각각 자주외교를 표방하는 대통령(안성기)과 친일노선을 주장하는 국무총리(문성근) 역할을 맡아 대립적인 캐릭터의 갈등을 보여준 적이 있다. 박원상, 김지호, 이경영 등 조연들 역시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연배우들을 뒷받침한다.
석궁테러 사건의 전말
재미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의 인기몰이를 설명하는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런 영화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지난 2007년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이른바 '석궁테러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는 입학 본고사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김 교수를 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이러자 김 교수는 “부당하게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며 복직소송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박홍우 부장판사)는 “재임용 탈락자체가 확실히 부당하다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취지로 패소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격분한 김 교수는 선고 3일 뒤 부장판사였던 박 판사를 찾아가 그에게 석궁을 들이댔다.
석궁테러 사건은 김 교수가 박 판사를 겨누고 석궁을 발사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박 판사가 이로 인해 실제 상해를 입었는지의 여부가 핵심쟁점이었다. 특히 박 판사가 입었던 내의와 자켓엔 혈흔이 있었는데 와이셔츠엔 없었고, 이에 대해 재판부가 혈흔감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희극이 되어버린 법정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 사건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 낸다. 연출자인 정지영 감독은 "르포 소설 '부러진 화살'과 공판 기록을 읽어보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게 없다"고 밝혔다. 실제 재판기록과도 거의 일치한다. 영화가 그리는 법정은 차라리 코메디에 가깝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음에도 재밌는 건 사실 자체가 코메디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미 개정 이전부터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피고인에게 유리할 법적 권리도, 증거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도 주목했지만 그뿐이다. 김 교수 사건의 언론 보도는 저지됐다.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모든 상황이 불리해지자 김 교수는 기자들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부러진 화살'에서 그려진 부조리한 법정은 곧 현실이다. 판결결과에 격분해 판사에게 석궁을 들이댄 행위를 무조건 옳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김 교수에게 패소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단은 분명 논란거리다. 법원이 김 교수가 석궁을 집어든 한 원인을 제공해 줬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법부가 권위만을 내세워 김 교수를 단죄했다는 점이다. 한 개인의 법익을 박탈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와 함께 피고인의 법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증거에 입각한 법리공방이 오가야 했다. 실제 김 교수가 박 부장판사를 향해 화살을 쏘았느냐는 재판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쟁점 조차 다뤄지지 않고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어쩌면 권력기관 스스로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한데 따른 당연한 귀결일른도 모른다. 그런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특히 우려스럽다. 적어도 국민들은 법 앞에서 만큼은 평등하기를 염원한다. 그렇지만 사법부는 이런 염원을 외면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자의적인 법해석이 난무하는 한편 힘 있는 사람은 무죄방면되고 힘 없는 사람은 중형을 받는, 이른바 ‘유전무죄무전유죄’ 관행이 만연해 있다.
대중이 단순히 재미 때문에 '부러진 화살'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혀 있을 때,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웃음유발의 차원을 넘어 억눌린 민초들의 울분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민들은 사법부의 권위의식에 질식할 만큼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이런 질식감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흥행돌풍은 예사롭지 않다. 사법당국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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