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2009)
State of Play
- 감독
- 케빈 맥도널드
- 출연
- 러셀 크로우, 벤 애플렉, 레이첼 맥아담스, 헬렌 밀렌, 로빈 라이트
- 정보
-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영국, 프랑스 | 127 분 | 2009-04-30
저널리즘의 위기에서 빛나는 기자 정신
어떤 어려움에도 저널리즘은 죽어선 안돼
언론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독자들의 알권리 충족이다. 독자로 하여금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기자들은 이 시간에도 부지런히 현장을 누빈다. 지금은 인터넷이 대세다. 모든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기자들의 활동방식은 늘 똑 같다.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주인공인 워싱턴 글로브지의 칼 매카프리 기자처럼 말이다.
매카프리 기자는 과거의 방식을 고집한다. 기사를 쓸 때 펜과 종이를 사용한다. 하지만 기사를 송고하려면 인터넷이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시스템 자체가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투른 솜씨로 자신의 기사를 타이핑해 송고한다.
어느 날 매카프리는 하원의원 스티븐 콜린스의 보좌관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스티븐은 매카프리와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 매카프리는 보좌관을 잃은 스티븐을 위로하는 한편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한다. 스티븐도 매카프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는 사건 취재 도중 엄청난 진실과 맞닥뜨린다. 절친한 친구인 스티븐이 군산 복합체와 결탁해 수년간 엄청난 이득을 챙겨왔던 것이다.
* 칼 매카프리는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건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카프리는 기자답게 '팩트'만 우직하게 추구해 나간다. 하지만 그가 불편한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위험도 높아진다. 친구인 스티븐이 직접 나서 회유하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음모론을 다룬 여느 스릴러 영화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의 진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빛난다. 매카프리 기자는 어렵사리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려 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핵심적인 사실 하나가 빠졌음을 발견한다. 그는 즉각 편집장에게 달려가 기사 출고를 미뤄달라고 간청한다. 이 대목에서 저널리즘이 봉착하고 있는 위기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널리즘의 위기, 그 가운데 빛나는 기자정신
매카프리가 기사 출고를 미루자 편집장은 불같이 화를 낸다. 제때 신문을 찍어내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현재 신문 산업은 위기 그 자체다. 기자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신문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회자된다. 종이신문의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광고수익도 예전 수준을 한참 밑돌고 있어서다. 인터넷이 정보 생산 및 유통 기반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변화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편집장 입장에서 볼 때, 기사출고 지연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연기파 배우인 헬렌 미렌은 신문 산업의 위기 앞에 고민하는 편집장 카메론 린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매카프리는 기자정신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기자는 사실에 목숨을 거는 직업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편집장이 욕설을 퍼부어도, 자신의 이름 걸고 나가는 기사에 허위사실을 적을 수는 없다. 당장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매카프리는 마지막 사실확인을 위해 사무실을 박차고 나간다. 추가 확인 없이 기사가 출고되어도 좋았을 상황이었다. 또 이 과정에서 그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으로 뛰쳐나갔다.
이 대목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론은 분명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럼에도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들의 직업윤리와 사실 확인에 충실해야 하는 기자정신만큼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언이다.
기자정신 훼손하는 엄혹한 현실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먼저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영화 담당 기자들은 이야기 전개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기자들은 주인공인 매카프리의 기자 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분히 글쓴이의 주관에 따라 좌우되기 일쑤다. 그래서 같은 영화여도 A신문에 호평이 실릴 수 있는 반면 B신문엔 악평이 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은 모든 매체의 영화담당 기자들이 호평을 쏟아 냈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을 단순히 저급한 수준의 동료의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수많은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진실 보도를 꿈꾸며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사 입사는 고시만큼이나 어렵다.
일단 좁은 관문을 통과해 '기자'라고 찍힌 명함을 손에 쥐는 순간은 꿈만 같다. 매카프리 기자와 마찬가지로 온갖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폼 나게' 기사 써보고자 하는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 언론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외적 변수들이 너무 많다. 가장 먼저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고려해야하고, 자신이 쓴 기사가 광고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도 따져보아야 한다.
또 대형 종교집단의 비리를 건드렸다가 해당 종교집단의 신도들이 사무실로 난입하는 상황도 가정해야 한다. 명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자신해도, 기사에 언급된 쪽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송사를 벌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이 나라의 언론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진실을 지키려했던 기자들은 권력에 의해 탄압받기 일쑤였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언론환경이 과거에 비해 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은 시련의 또 다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180명의 언론인이 징계를 받았다. 이 가운데 8명이 해고를 당했고 각각 30명과 32명이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았다. 경고, 근신과 출근정지는 각각 109명과 1명이었다.
올해 들어서 언론의 현실은 더욱 엄혹해지는 양상이다. 198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기간 방송사인 KBS와 MBC 기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국가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도 파업 대열에 동참했다. 점점 열악해져가는 한국 언론의 현실은 나라밖에서도 화제 거리다.
지난 해 국제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자유'에서 '부분적 자유'로 강등시켰다. 정부의 검열, 그리고 대통령의 측근을 공영방송 사장에 임명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관행이 강등의 근거였다. 영국의 유력 경제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 정부가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은 지금 이중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언론은 무기력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권력과 자본이 진실의 힘마저 누를 수는 없다. 어떤 어려움에도 저널리즘의 기본 정신은 훼손되어선 안 된다. 저널리즘의 사망은 곧 시대적 영혼의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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