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ine Review

프로스트 vs 닉슨] 세상 권력자들에게 던지는 뼈아픈 전언


프로스트 vs 닉슨
감독 론 하워드 (2008 / 프랑스,영국,미국)
출연 프랭크 란젤라,마이클 쉰
상세보기



프로스트 vs 닉슨] 세상 권력자들에게 주는 뼈아픈 전언


스캔들의 중심에 선 정치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는 그닥 쉽지 않다. 특히나, 스캔들을 저지른 당사자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진행형일 경우 더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잘만 만들면 시종 유쾌하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논란의 주인공에게 다가설 수 있다. 론 하워드 감독의 2008년作 <프로스트 vs 닉슨>이 바로 그런 영화다. 이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쇼프로그램 진행자인 데이빗 프로스트와 닉슨 前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를 오가며 쇼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데이빗 프로스트는 생방송으로 닉슨 대통령의 하야 성명 실황을 접하게 된다. 생방송을 지켜보던 데이빗은 닉슨 대통령의 상품가치를 직감하곤 닉슨과의 인터뷰를 추진한다. 그러나 사임 이후에도 닉슨 대통령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던 터라 미국 여론은 데이빗 프로스트의 프로젝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NBC 등 미국의 대형 방송사들도 여론을 의식해 방영권 매입에 난색을 표한다. 반면 정계복귀 기회를 노리던 닉슨은 쇼프로 MC와의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전직 대통령, 특히 베트남戰, 핑퐁외교와 뒤이은 미-중 국교정상화,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진실 공방의 주역인 대통령이라는 주제는 무겁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아주 부드럽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흐른다. 영화의 제작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오만과 편견>, <러브 액츄얼리>로 유명한 영국의 워킹 타이틀. 워킹 타이틀이 내놓은 작품들은 결혼, 죽음, 사랑 등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주제들을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나간다.


워킹 타이틀은 자신들의 전매특허를 정치의 영역에 까지 확장시킨다. 닉슨과의 인터뷰가 성사되는 과정은 우스꽝스럽다. 닉슨은 데이빗 프로스트측이 CBS의 '60분'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제시하자 얼른 인터뷰에 응한다. 그리고 인터뷰 초반 닉슨은 자신들의 보좌진들을 총동원해 '일개' 쇼프로 진행자인 데이빗을 마음껏 농락한다.


초반은 유쾌하게 흐르지만 중반을 넘어갈수록 영화는 진지함을 더해간다. 데이빗 프로스트는 자신을 밟고 올라서려는 닉슨을 보기 좋게 때려눕힌다. 닉슨을 때려눕힌 무기는 바로 '진실'이었다. 데이빗 프로스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닉슨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시종일관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던 닉슨도 진실 앞에선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닉슨은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미국 국민들을, 정부에서 일하고자 했던 미국 청년들을,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실망시켰다.


이 고백은 미국 국민들이 닉슨에게서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고백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고백은 스캔들로 쓸쓸하게 정치무대에서 퇴장한 닉슨에게 연민의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마지막에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전개, 워킹 타이틀의 저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타이틀 롤 닉슨 역을 맡았던 프랭크 란젤라는 실제 닉슨이 환생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 낸다. 전작 <퀸>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역을 맡았던 마이클 쉰 역시 다시 한 번 실제 인물이자 닉슨의 상대역인 프로스트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연기내공을 뽐낸다. 프랭크 란젤라와 마이클 쉰의 연기대결은 지난 날 TV화면에서 벌어졌던 닉슨과 프로스트의 불꽃 튀는 접전을 방불케 한다.


닉슨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닉슨에 대한 재평가는 가까운 장래에 이뤄질 것이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가려진 그의 정치적 유산들 - 이를테면 미-중 국교정상화 - 은 그저 흘려버리기엔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 권한행사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명분이 '국익'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한 이 교훈은 닉슨이 남긴 최고의 정치적 유산이다. 닉슨이 남긴 정치적 유산은 또 미국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권력자들에게 던져주는 의미 있는 전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