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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도가니] 세상이 우리를 바꿀 수 없다


도가니
감독 황동혁 (2011 / 한국)
출연 공유,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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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먹먹하기만 하다. 2시간 분량의 영화 속 이야기에 어둡기만 한 우리 사회의 이면이 다 담겨져 있어서다. 아동 성폭력, 장애인 학대,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리고 일그러진 기독교 신앙....


무엇보다 가슴을 짓누르는 건, 약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한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가장 강력한 척도는 어린이,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태도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한없이 싸늘하다. 특히나 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들은 정상인들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이 영화 '도가니'는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교회 장로가 운영하는 장애인 학교, 그 학교에서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건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선 이런 일이 응당 벌어질 수 있어서 슬프다.


자유, 정의, 평등 ? 다 허울 좋은 구호일 뿐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성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미술교사 강인호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규한다. 그러나 공지영의 원작은 다르다. 원작에서 주인공인 강인호는 마치 자신이 죽을 죄라도 지은 양 사건의 무대를 황급히 떠난다. 야반도주 하듯 가혹한 현실에서 도망치는 강인호의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그럴 수밖에, 제 아무리 정의를 외친들 그 잘난 정의감 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끄트머리에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준 영화 속에서 조그맣게나마 위로를 찾을 뿐이다. 강인호를 돕던 무진 인권센터 정유미 간사는 인호에게 편지를 쓴다. 인호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대목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싸우려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 함이에요"


영화는 따스한 온기와 법정 드라마의 팽팽한 긴장감이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법정에서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장애 아동 연두가 용의자를 특정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에게 희미하게 나마 청각이 남아 있음을 증언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교장은 쌍둥이 형제로 동생은 학교 행정실장을 맡고 있다. 연두는 너무나도 똑같은 두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 수치를 안긴 가해자를 찾아내야 한다. 연두가 가해자를 찾아내는 대목은 마치 구약성서의 솔로몬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 가운데 진짜 엄마를 찾아내는 대목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지 넘친다. 한편 연두가 자신에게 청각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대목에서 흐르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 가혹할이만치 싸늘한 이 사회의 어둠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안을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른다면 가혹하기만한 현실은 한결 따사로와 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