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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워낭소리]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 - <워낭소리> 연출자 이충렬 감독 인터뷰





* 이충렬 감독

워낭소리]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 
- <워낭소리> 연출자 이충렬 감독 인터뷰
 

지난 2009년 초 시골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우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화제의 영화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개봉은 7개관에서 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탄력을 받기 시작해 개봉 3주차인 2009년 1월 29일부터는 전국 34개관으로 개봉관이 늘어났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영화를 연출한 이충렬 감독의 말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늘 소가 연상됐습니다. 아버지는 소였고 소는 곧 아버지였었습니다. 이 영화 <워낭소리>는 소를 통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어떻게 헌신했는지를 주제로 하고 있지요.
 

지난 날,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렸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이 대학에 간 자식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소를 잡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은 소 값은 폭락한데 비해 등록금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 탓에 소 한 마리 잡아봐야 한 학기 등록금도 마련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소를 키우고 잡아서 자식 뒷바라지 한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은 '우골탑'이라는 말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쉰다. <워낭소리> 연출자의 이야기는 풍요로 인해 잊혀졌던 지난날의 말을 되새김질 하게 해준다.


사실 <워낭소리>의 이야기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야기의 흐름은 소처럼 우직하고 느릿하다. 그리고 제목도 사뭇 생소하다. 여기서 '워낭'의 사전적 의미는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다. <워낭소리>란 제목을 되 뇌이고 있노라면 곧 방울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그런데 제목을 소리와 연관시킨 점은 바로 치밀한 연출의 결과다.


이충렬 감독은 "기존 다큐와는 달리 '소리'에 큰 비중을 뒀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지금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여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진정성을 전달하는 요소는 소리다"는 것이다.


 

<워낭소리> 탄생 뒷이야기



이충렬 감독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영화 연출자는 아니다. 방송 외주 제작사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주로 다룬 테마는 비전향 장기수, 무속인, 사북탄광 노동자 등이다. 사실 이런 주제들은 하나 같이 방송이 다루기 꺼려하는 주제들이다. 당연히 이 감독은 쓰라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이 감독은 "자신이 천착했던 아이템들이 방송에서는 쉽사리 수용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고 토로한다. '워낭소리' 역시 영화관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은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제작사의 도움에 힘입어 영화로 탄생하게 된다.  


이 영화 <워낭소리>도 애초에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사장이 도움을 줬어요.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워낭소리>는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09년 1월 29일 현재 누적관객수 4만 7천명,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개봉관은 처음 7개이던 것이 지금은 34개관으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수자는 별 의미 없다"고 겸손하게 답한다. "영화 제작 당시 의도했던 점, 즉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나를 키워준, 나의 오늘을 있게 한 소중한 이들을 기억하려고 애쓴 점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돼 흥행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소감이다.


이 영화 <워낭소리>는 한국영화 최초로 제25회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수상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긴 했지만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수상 욕심이 없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제 의지와 무관하잖아요? 수상을 못한 점은 아쉽지만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 관객들이 영화에 공감했습니다. 기립박수는 아니었지만 큰 박수를 두 번이나 받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팔순 농부와 늙은 소의 30여년에 이르는 우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소소한 일상 가운데 내자한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는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마치 우직한 소걸음처럼.


<워낭소리>가 보여주는 소소한 일상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 뉴스 후 - 이충렬 감독과 인터뷰를 가진지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 8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이충렬 감독이 뇌종양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이다. 개봉 당시만 해도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고영재 PD와 수익금을 둘러싸고 분쟁이 생겼고, 이로 인해 병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힘입어 모처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는데.... 그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충렬 감독의 쾌유, 그리고 분쟁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