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제임스 본드, 그는 세계화 시대의 스파이다. 그러나 다소 역설적이게도 제임스 본드는 첩보원들의 황금기인 미-소 냉전을 모태로 탄생했다.
미국과 소련이 첨예한 대결을 벌였던 냉전시절, 영국 MI6 소속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웠다. 그리곤 미끈한 여자들(본드 걸)과 즐기며 세계평화를 지키느라 쌓인 피로를 풀었다.
하지만 분명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주적이 소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의 적은 미-소 냉전을 틈타 세계지배를 노리는 '스펙터'라는 조직이었다. 스펙터는 세계도처에서 암약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극한대립을 이용해 핵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소련을 동시에 패망시킨 뒤 무주공산이 된 세계를 접수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영국 정보부는 이런 스펙터의 음모에 맞서 세계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제임스 본드를 급파했다.
그러나 이제 냉전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제임스 본드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그렇지만 냉전 종식이 세계평화로 직결된 것도 아니었다. 세계질서는 더 불안정해져만 갔다. 소련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 군부의 강경파(골든 아이), 거대 마약조직(라이선스 투 킬), 세계 여론을 틀어쥐려는 언론재벌(투모로우 네버다이), 원유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러시아 마피아(언리미티드) 등등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불경한' 세력들은 세계 도처에서 활보하고 다녔다.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세계질서를 흩어 놓으려는 검은 세력들은 초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본드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국가'의 경계선을 뛰어 넘어 활개 치는 악의 세력들을 소탕하는 임무를 말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제임스 본드는 냉전시절에도 초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악의 세력을 상대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냉전 이후 활짝 열린 세계화의 시대, 제임스 본드는 현 시대에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악의 세력에 맞설 능력과 경력을 고루 갖춘 적임자였다.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임스 본드의 면모는 훨씬 강력해지기에 이른다. 지난 냉전시절, 숀 코네리, 조지 레젠비, 로저 무어까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들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제임스 본드를 맡은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23번째 007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부터 새로이 제임스 본드로 분한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르러서는 람보를 방불케는 완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카지노 로얄>에 등장한 제임스 본드의 몸매를 보라. 근육으로 휘감겨진 몸매, 이전의 제임스 본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카지노 로얄>,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나타난 다니엘 크레이그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는 무척이나 신선하다.
조금씩 드러나는 '초국적 악의 네트워크'의 실체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007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에서 악의 세력들은 도박을 이용해 테러자금을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에 의해 이런 음모는 좌절됐다. 지난 2008년 개봉한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악의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제임스 본드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화이트를 생포해 온다. 화이트가 운영하는 조직은 자선사업가인 도미닉 그린을 앞세워 볼리비아의 군부 쿠데타를 획책한다. 도미닉 그린은 자신의 사업체를 통해 제3국 망명 중인 메드라노 장군에게 자금과 조직을 지원하고 남미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비롯, 서구 각국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 낸다. 도미닉 그린이 운영하고 있는 조직의 이름은 '퀀텀'. 사실 도미닉 역시 거대 조직의 행동대원일 뿐이다.
여기서 잠깐 현실 정치를 살펴보자. 베네수엘라의 후고 차베스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반미-반서방 사회주의 노선을 성공적으로 관철해 나가고 있다. 차베스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석유'다. 차베스의 사례는 '석유'의 국제정치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이라크 전쟁 역시 '석유'에서 그 발발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도미닉 그린, 더 나아가 그가 속한 조직이 볼리비아에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제2, 제3의 차베스가 나오는 사태를 막고 석유 자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도미닉 그린 자신은 볼리비아의 수자원을 확보해 볼리비아의 경제를 장악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제임스 본드는 퀀텀의 움직임을 간파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 당국이 제임스 본드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영국 정부 역시 안정적으로 '석유' 자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이렇듯 <퀀텀 오브 솔러스>의 이야기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생생한 단면이고 제임스 본드는 그 중심에 서 있다.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제임스 본드는 의문의 인물 화이트를 체포, 그가 속한 조직의 실체를 캐내려 한다. 하지만 화이트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며 제임스 본드에게 경멸조로 내뱉는다.
우리는 어디에든 있어
We are everywhere !!!!
세계화 시대, 재화와 용역, 그리고 자본은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장악해 세계지배를 노리는 악의 무리들 역시 지구촌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화이트의 짤막한 한 마디는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제임스 본드 역시 지구촌을 마음껏 누비며 세계지배를 노리는 악의 무리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007 제임스 본드, 그는 세계화 시대에 진정으로 걸맞는 스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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