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웅 DNA 이식시도, 성공적이지 않아
DC코믹스 원작의 수퍼맨은 전형적인 수퍼 히어로다. 그는 비범한 능력으로 지구를 구해낸다. 그리고 일단 위기 상황이 끝나면 연인인 로이스 레인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의 리부트 버전인 '맨 오브 스틸'의 수퍼맨은 반영웅적 인상을 물씬 풍긴다.
오리지널 버전의 수퍼맨은 자신의 초능력을 마음껏 과시한다. 반면 리부트 버전의 수퍼맨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인해 고민에 휩싸인다. 이런 모습은 '스파이더 맨'이나 '헐크' 같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 히어로를 방불케 한다.
수퍼맨의 반영웅적 캐릭터는 상당 부분 제작과 각본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입김 때문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던 감독. 리부트 시리즈의 배트맨 / 브루스 웨인은 음울하기 그지없다. 이런 음울한 성격은 어린 시절 악당의 손에 부모를 잃은 아픈 기억에서 비롯됐다. 수퍼 히어로가 갖춰야 할 초능력도 없다. 오랜 기간 수련을 통해 비범한 전투력을 획득했을 뿐이다.
* '맨 오브 스틸'
크리스토퍼 놀란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배트맨의 반영웅적 이미지를 고담이라는 초현실 공간에 재현해 냈다. 그의 반영웅 DNA는 '맨 오브 스틸'에서 수퍼맨에 이식되기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맨 오브 스틸'이 그려낸 수퍼맨은 사뭇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낯선 느낌은 잠시 뿐이다. 그가 자신의 초능력을 자각하고 수퍼맨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우주 악당 조드 장군에 맞서기 위한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 후반 펼쳐지는 액션장면은 볼거리 그 자체다. 특히 수퍼맨과 조드 장군이 뉴욕시를 초토화시키며 맞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맨 오브 스틸'의 서사구조와 액션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주 악당이 지구를 침략해 수퍼 히어로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는 설정은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가 이미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어벤져스'는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 모든 수퍼 히어로들이 한데 힘을 합치는데 비해 '맨 오브 스틸'은 수퍼맨 혼자 우주 악당들을 감당한다는 점뿐이다.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대목은 출연진들의 연기다. 영국 출신의 헨리 카빌은 반영웅적인 수퍼맨 역을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늑대와 춤을', '보디가드'로 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케빈 코스트너가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칼엘 / 클라크 켄트의 양아버지 조너던 켄트로 분해 한층 농익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토네이도에 휩싸이면서도 클라크에게 초능력을 쓰지 말라고 주문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 역을 맡은 러셀 크로의 존재도 인상적이다. 러셀 크로는 이 영화에서 칼엘 / 클라크 켄트의 친아버지인 조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그의 존재는 '맨 오브 스틸'의 영웅 서사구조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로이스 레인 역을 맡은 에이미 애덤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역대 최고의 로이스 레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밖에도 칼엘 / 클라크 켄트의 양어머니 마사 역을 맡은 다이안 레인, 데일리 플레넛의 페리 화이트 편집장으로 등장하는 로렌스 피시번 등등 중견 연기자들이 총출동해 타이틀 롤인 수퍼맨을 뒷받침한다. 이런 진용은 배트맨 / 브루스 웨인 주변에 루시우스 폭스(모건 프리맨), 짐 고든(개리 올드맨), 알프레드(마이클 케인), 레이첼(메기 질렌할)이 포진해 있는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전형적인 수퍼 히어로에 반영웅 DNA를 이식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2시간 반 가까운 러닝타임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심오한 수퍼 히어로 액션활극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저 여름시즌을 겨냥한 블록버스터로 즐기면 그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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