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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킹스 스피치] 말더듬이 왕의 마이크 울렁증 극복기

말더듬이 왕의 마이크 울렁증 극복기


아카데미는 보수적인 취향을 자랑한다. 이런 탓에 귀족취향의 속물근성에 쏠리는 경향도 있다. 이런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남우주연 등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한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는 아카데미의 입맛에 딱 맞는 영화다. 영국 왕실을 다룬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우아한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하며 영국이 왕을 중심으로 '악의 제국' 나치 독일과 맞선다.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줄만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 '킹스 스피치'는 아카데미의 속물근성을 뛰어 넘는 품격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소재라도 가공하기에 따라선 훌륭한 보석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다. 마이크 앞에 서면 작아지는 왕, 더구나 실권도 없이 그저 광대에 지나지 않은 왕이 마이크 앞에서 말을 더듬는 모습은 차라리 한 편의 코미디다. 소재만 봤을 땐 눈길을 확 사로잡는 매력이 없다. 오히려 그의 친형 에드워드 8세의 이야기가 훨씬 끌린다. 미국인 이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노릇(Kinging)을 포기한 에드워드 8세의 애정행각은 여전히 '세기의 로맨스'라는 찬사가 붙어 다닌다. 너무나 잘 알려져 식상할 정도다. 


연출자인 톰 후퍼는 매력적이지만 닳고 닳은 소재보다 조지 6세의 이야기로 승부한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꽉 짜인 장면구조다. 조지 6세는 능력도 있고 배짱도 좋지만 마이크 울렁증 때문에 대중 앞에 서기 꺼려한다. 그러나 호시탐탐 세계지배를 노리는 나치 독일에 맞서려면 싫든 좋든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감당해 내야 한다.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는 일찌감치 조지 6세가 될 성싶은 떡잎임을 알아본다. 그렇기에 그는 평민, 더구나 당시만 해도 변방인 호주 출신의 실패한 연극인임에도 왕 앞에 당당히 서서 그의 문제를 끌어안는다. 




* 킹스 스피치


이 영화의 장면 구조는 이 대목에서 빛난다. 대게 왕은 내려다보는 입장이고 평민은 왕을 올려다봐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 작품 '킹스 스피치'는 이런 위계를 과감히 역전시킨다. 라이오넬 로그는 조지 6세를 내려다본다. 정확하게는 카메라 앵글이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한다. 반대로 왕인 조지 6세는 라이오넬 로그를 올려다봐야 한다. 이런 구도는 말더듬이로 불안해하는 조지 6세의 내면을, 그의 말더듬증을 치료하려는 라이오넬 로그의 의지를 표현해 낸다.


카메라는 라이오넬 로그와 조지 6세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비춘다. 이 장면에서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른다. 이 장면은 3분할 구도, 즉 장면의 주제를 화면의 왼쪽(혹은 오른쪽)으로 배치하는 구도로 담아낸다. 이런 구도는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그려내고 다른 한편으로 보는 이의 시선이 분산되는 걸 막아준다. 그리고 화면 중간 중간 클로즈업으로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의 감정 변화를 파고 들어간다. 이 작품의 장면 전개는 조지 6세가 대국민 연설을 하는 대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조지 6세가 대국민 연설을 하는 대목은 실로 감동적이다. 전쟁의 공포가 엄습하는 위기의 순간 말더듬이 왕은 결연한 어조로 국민들에게 침착하게(calm), 그러나 결연하게(firm) 국가적 위기에 대처해 줄 것을 호소한다. 


왕의 연설은 약 5분 정도 이어진다. 이 작품의 모든 이야기는 이 5분에 맞춰져 전개되 나간다. 조지 6세로 분한 콜린 퍼스의 연기는 실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라이오넬 로그 역의 제프리 러쉬 역시 훌륭하다. 두 배우가 나란히 아카데미 남우주연-조연상을 수상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 '킹스 스피치'는 매력적이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아카데미의 보수적 성향과 귀족적 속물근성을 훌륭히 만족시켜주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겨준다. 아카데미의 선택을 단순히 속물근성의 발로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킹스 스피치 (2011)

The King's Speech 
8.2
감독
톰 후퍼
출연
콜린 퍼스, 제프리 러시, 헬레나 본햄 카터, 가이 피어스, 제니퍼 엘
정보
드라마 |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 118 분 | 20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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