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기회와 재능, 그리고 한 인간의 운명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의 운명은 좋은 기회를 찾아다니는 재능이 풍부한 인물을 선택한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운명에 의해 선택된 인간의 생이 탄탄대로를 걷지만은 않는 법이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은 비범한 재능을 통해 기회를 엿보지만 권력투쟁의 틈바구니에서 파멸해가는 관상쟁이 김내경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 영화다.
관상쟁이 김내경은 얼굴만으로 사람의 운명을 짚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세상을 등지며 살던 그는 기생 연홍의 제안을 받고 한양에 입성한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용해 입신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그러던 차, 사헌부 장령의 의뢰를 받아 살인사건 현장에 투입돼 살인범을 검거하는 공을 세운다. 김내경이 살인범을 지목하는 장면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바스커빌의 윌리엄이 수도원장의 말 브루넬로를 찾아내는 대목을 방불케 한다.
그의 이름은 마침내 왕의 귀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당시 궁정은 뒤숭숭하기만 했다. 문종은 병약해 죽을 날만 손꼽고 있는 처지였고 수양대군은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었다. 이에 문종은 김종서에게 아들 단종의 안위를 당부하는 한편 김내경을 등용해 차후 벌어질지 모를 권력다툼의 싹을 자르려 했다. 김내경은 왕의 뜻을 받들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만큼은 막아보려 온 몸을 던진다.
* <관상>
타이틀 롤 김내경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 한껏 물오른 연기력을 뽐낸다. 그의 뒤를 받치는 조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김종서 역을 맡은 백윤식은 중후한 연기로 무게감을 과시하며 김혜수, 조정석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다만 수양대군 역을 맡은 이정재의 연기에 '독기'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연기를 보면서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 역을 맡았던 정진영을 기용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수양대군의 궁정 쿠데타 장면이다.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은 그동안 무뚝뚝한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계유정란을 생동감 있는 드라마로 재구성해 낸다. 특히 궁정에서 벌어지는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암투,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위험천만 줄타기를 벌이는 김내경의 심경 묘사는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이음새다. 궁정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는 가쁜 호흡으로 가져갈 때 극적 효과가 배가되기 마련이다. 계유정란을 묘사하는 대목은 빠른 호흡으로 전개돼 나간다. 그러나 곳곳에서 완급 조절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시종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칭찬할 만 하다.
영화는 김내경의 입을 빌어 권력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계유정란 이후 낙향한 김내경은 한명회에게 그 어떤 노력으로도 수양대군의 권력찬탈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라고 이야기를 맺는다. 파도를 쫓다보면 바람을 잊고 바람을 맞다보면 파도를 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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