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망언, 진원지는 아베 총리
'과거사 청산 없는 미래는 모래성' 인식해야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이 거침 없다. 극우 정당인 일본 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 공동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5월 초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미군사령관에게 "미군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풍속(성매매)업소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13일엔 "(전시에 옛 일본군이 동원한)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이러자 '원조극우' 이시하라 신타로 유신회 공동대표도 기다렸다는 듯 과거사와 관련해 망언을 내놓았다.
이시하라 공동대표는 지난 5월18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침략이 아니다.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관해 무지한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하시모토 공동대표의 발언이 다소 낯 뜨거웠다면 이시하라 공동대표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마저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망언을 둘러싼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엔 정치인들이 망언을 내뱉으면 정중히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의례적인 사과조차도 없다. 오히려 망언으로 인해 외교 분쟁이 촉발되면 더욱 높은 수위의 망언을 내놓는 양상이다.
일본 우익들이 거침없이 망언을 내놓는 현상의 이면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시하라 공동대표의 침략전쟁 부정 발언은 아베 총리의 과거사 인식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고 봐야 한다. 침략역사를 부인한 장본인이 바로 아베였기 때문이다.
* 아베 총리(출처 : 블룸버그)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식민지배와 침략, 그리고 이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힌 무라야마 담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인식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진다. 그는 지난 5월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몰장병들을 추모하지 않는가? 미국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한다"면서 "나 역시 일본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지도자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발언으로 주변국인 한국-중국의 반발을 산데 이어 미국으로부터도 우려의 뜻을 전해 들었다. 이러자 의회에선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언론 인터뷰에서는 "침략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며 살짝 발을 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과거사 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침략행위에 대한 정의는 역사가의 몫"이라는 언급은 그의 역사인식의 일단을 잘 드러내준다.
군대를 동원해 타국의 영토를 점령한 행위는 명백한 침략행위다. 또 침략행위를 저지른 국가의 지도자라면 이 같은 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인식은 갖춰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베의 발언은 궤변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위에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갔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유럽의 안보-평화체제구축의 주춧돌이 됐다. 아베는 "일본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독일의 사례는 과거사 청산 없는 미래는 모래성에 불과한 것임을 일깨워준다. 아베 총리는 하루라도 빨리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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