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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5.18과 미국의 역할

5.18과 미국의 역할


5.18을 즈음해 역사 제대로 알기 논쟁이 치열하다. 특히 종편 방송들의 왜곡보도와 '일베'라는 극우 웹사이트의 준동, 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 논란이 더해지면서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5.18 바로 알기를 주창한다면 미국의 역할도 빼놓아선 안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에만 국한시켜 볼 때 5.18은 반미감정을 분출시킨 사건이었다. 이전부터 미군기지 인근 주민들을 사이로 암암리에 미군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기도 했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어디까지나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은인이었다. 하지만 5.18을 계기로 이 같은 나이브한 시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5.18을 지켜본 한국인들은 미국이 신군부의 학살행위를 직접 사주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사실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집어삼킨 12.12 사태에서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차에 광주에서 벌어진 신군부의 만행은 미국 개입설을 확신으로 굳어지게 했다. 


5.18에 대해 미국은 오랜 기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국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5공 청문회를 여는 한편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미 대사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를 거부했다. 

* 광주 5.18


미국이 5.18에 취한 태도는 12.12에 취했던 입장과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에 신군부의 등장을 묵인했다. 광주에서의 혼란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는 5월 22일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엔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최급선무는 남한 정부가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후로도 광범위한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무력 사용은 최소한으로 그쳐야한다는 것에 대다수가 합의했다. 또한 질서 회복 후 미국이 남한 정부, 특히 군부를 압박해서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요약하면 "신군부가 무력을 사용하되 안보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무엇보다 신군부의 무력행사는 치안적인 목적을 훨씬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미국이 사태 수습 후 군부를 압박한다는 발상은 탁상공론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신군부의 등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신군부에 행사할 지렛대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미국이 신군부에 압력을 가한다는 사고는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다. 


이 같은 발상은 또 미국에서 권력이 카터에서 신보수주의를 기치로 내건 레이건으로 넘어가면서 사문화됐다. 레이건은 카터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백지화시키는 한편 전두환을 미국으로 불러 환대를 베풀었다. 레이건의 행태는 카터 행정부가 전두환을 냉대했던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지에서 한국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도퍼는 <두 개의 한국>에서 이렇게 적는다. 


"레이건은 국무부에서 조언한 절제된 인사말을 제쳐두고 전두환을 따듯한 포옹으로 맞이했다. 카터 행정부가 전두환을 멀리하고자 애썼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중략)


레이건의 따듯한 영접은 전두환의 정치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또한 그것은 남한 사람들에게 전두환의 정권찬탈이 기정사실화됐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레이건은 열렬한 환영을 통해 전두환의 마음 속 깊이 의무감과 호의를 심는데 성공했다. 레이건은 이러한 호의를 십분 활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과거 미국을 흠모했던 한국인들 마음속에 지독한 적개심과 배신감을 안겨줬다."


미국이 전두환을 사주해 만행을 저질렀다는 시각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탁상공론이나 다름없는 전략적 사고가 전두환이 만행을 저지를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탁상공론식 발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8년 이명박 집권 이후 미국에 무언가를 쥐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모양새다. 


참으로 착잡한 2013년 5.1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