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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우리 사회의 시민도덕을 묻는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닥치던 1950년대의 미국은 광기가 지배했다. 극작가인 아서 밀러는 이런 광기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그는 1952년 미 의회 산하 '비(非)미국적행위 조사위원회'에 불려가 신문을 받기까지 했다. 그는 극작가답게 자신의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 작품이 1953년 작 '크루서블'이었다. 메사추세츠 세일럼에서 실제 벌어진 마녀사냥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무차별적 마녀사냥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생생히 그린다. 


매사추세츠 세일럼은 청교도주의가 강하게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비가일을 주축으로 소녀 몇몇이 장난삼아 부두교 의식을 벌이다 발각된다. 이 사건으로 세일럼은 발칵 뒤집힌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종교재판관이 들이닥치고 아비가일을 비롯한 소녀들은 줄소환 당하기에 이른다. 


아비가일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흑인 하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가일에 의해 마녀로 지목 당해 재판에 회부됐다. 이 가운데 몇몇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비가일은 거침이 없다. 처음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거짓말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말은 확신으로 굳어간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흠모했지만 자신을 거절한 마을의 명망가인 존 프록터마저 마귀로 지목한다. 

* 아서 밀러(1915~2005)


존 프록터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자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아비가일의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이 과연 신빙성 있는 근거인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한편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존 프록터도 마귀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격론 끝에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을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이제 마을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된다. 


변희재라는 인물이 연일 화제다. 그는 자신이 소위 '친노종북' 척결의 선봉장이라는 소명을 받은 듯 보인다. 그런데 친노종북이란 개념 자체가 자의적인데다 주로 SNS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주장은 잡설에 가깝다. 정치적 견해를 떠나 그의 인간성마저 의심스러워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 들어서는 이름난 보수매체에게 마저 종북 딱지를 붙인다. 참으로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행태다. 


'크루서블'에서 아비가일은 종교 재판관과 마을로부터 완전히 버림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카시즘 광풍의 주역이었던 존 맥카시는 상원에서 탄핵됐고, 그는 이 충격으로 4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변희재는 거침이 없다. 


그 자가 전방위적인 종북몰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의 허무맹랑한 발언을 일정 수준 용인하고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잡설은 애국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을 통해 퍼 날라지고 있다. 


이건 언론의 자유나 관용의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인 사회 교양수준과 시민도덕의 문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