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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시험대에 오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시험대에 오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 야심찬 대북정책 의제, 강 vs 강 대결에 존재감 상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 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4월26일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우리측 인원의 철수를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인 27일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인원을 전원 철수시켰다. 4월30일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체류인원 50명 가운데 43명이 귀환했다. 나머지 7명은 북한과의 미수금 정산 처리 문제를 위해 남게 됐다. 


이번 결정은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낳았다. 이에 대해 야권은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영수회담을 제의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파급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시험대에 올렸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12년 7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출마선언문이었다. 박 후보는 출마선언문을 통해 "남북 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다"라고 한 뒤 "이를 위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적 공감대 위에 남북한의 신뢰, 국제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면서 "안보는 확실하게 다지면서 북핵문제 진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며, 새로운 안보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인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북정책의 기조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내용은 명확하지 않았다. 민감한 이슈에 대해 원론적인 언급만 할 뿐 말을 아끼는 스타일로 유명한 그는 대북정책과 관련된 의제에 관해서는 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출마선언 6개월 전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열린 적이 있었다. 2012년 2월28일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이 바로 그 자리였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그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첫째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포문을 연 뒤 "지금까지 남북간, 그리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 등 기존의 약속들은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연설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전반적인 기조를 암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군사적 도발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면서도 동시에 "인도적 문제나 호혜적인 교류사업은 정치적 상황이 변하더라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이 연설을 통해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남북간 인도적 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가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보수 정치권의 대북 강경론의 기조를 유지함과 동시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의 성과를 수용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의 태도 및 상황 변화에 따라서 우리 정부가 '당근'(대화)과 '채찍'(강경책)을 모두 활용할 가능성이 열렸다고도 볼 수 있다. 


시험대에 오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실효성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는 예상외로 빨리 찾아왔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을 불과 2주 앞둔 2월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에 경악했고 UN안전보장이사회(이하 UN안보리)는 대북 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발은 그칠 줄 몰랐다. 


이들은 UN안보리의 제재 움직임은 물론 한 · 미 연례 합동 군사훈련(키리졸브 훈련)을 문제 삼고 나섰다. 김영철 북한군 정찰총국장은 3월5일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는 내용의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즉각 대응 조치를 취했다. B-52, B-2 전략폭격기, 핵 잠수함 사이언, 그리고 F-22 등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해 한반도 안보 수호 의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미국의 무력시위도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전략폭격기 B-52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 뒤 "전략폭격기가 조선반도에 다시 출격한다면 적대세력들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자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북한과 미국이 주도했다. 하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개성공단 관문인 파주 통일대교(출처 - 연합뉴스)


북한은 4월 3일 우리측 근로자의 개성공단 진입을 불허했다. 이어 8일엔 "우리 종업원 철수와 공업지구사업 잠정 중단을 비롯해 중대조치와 관련한 실무적 사업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맡아 집행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후 사태가 어떻게 번져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개성공단 중단조치였다. 


북한이 내세운 주된 명분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의 발언이었다. 김 장관은 4월3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북핵 안보전략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북이) 앞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 있다"며 "국방부는 국민 신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대책을 마련 중이며, 만약 사태가 생기면 군사 조치와 더불어 만반의 대책도 마련돼 있다"고 밝힌 바 있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이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북한은 개성공단 중단을 선언하면서 "김관진 (장관)과 같은 극악한 대결광신자들에 의해 6·15의 산아인 개성공업지구가 그 본래의 성격과 사명을 떠나 동족대결과 군사적 도발의 마당으로 전락되는 사태를 더는 허용할 수 없다"며 김 장관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 전후에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위기상황이 고조됐다. 


개성공단 중단 수순 밟으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실종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엔 강경한 입장이었다.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북한에 대해 "그릇된 행동을 멈추라"면서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곧장 강경정책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통일부가 나서서 북한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월11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 위협을 거듭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한반도 위기 상황을 더 이상 조성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하며, 이와 관련 북한측이 재개하기를 원하는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공식적인 대화제의였는지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했다. 당사자인 류 장관은 "대화 제의라기보다 현재 개성공단 문제, 북한의 가중되는 위협적인 행동 같은 모든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청와대도 대화제의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는 같은 날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만찬에서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히자 곧 뒤집혔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4월12일 브리핑을 통해 류 장관의 전날 성명이 "사실상의 대화제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통일부는 4월25일 남북 당국자간 실무회담 개최를 공식 제의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개성공단 근무자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책임 있는 남북 당국간 실무 회담 개최를 북한 당국에 공식 제의한다"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어 "북한이 우리 측이 제의하는 당국간 회담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로선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통일부의 입장은 북한의 수용 여부에 따라선 개성공단 인원 철수 등의 강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우리 정부가 설정한 회담수용 시한인 4월26일 정오를 약 두 시간 가량 넘긴 오후 2시경 북한은 담화를 발표해 "우리를 우롱하는 최후통첩식 성명"이라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오히려 "남조선 괴뢰패당이 계속 사태의 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가 먼저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중대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남아 있는 인원들의 생명이 걱정된다면 남측으로 모든 인원을 전원철수하면 될 것"이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젠 우리 정부가 중대조치를 취할 차례였다. 결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기업 근로자들에 대해 전원 귀환 조치를 내렸다. 4월27일 개성공단에 머물던 126명의 우리측 체류인원들은 차량 63대를 이용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통행제한 조치를 취한 지 24일만의 일이었다. 


한반도 위기상황이 고조되고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명령이 취해지는 와중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핵을 포기하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라"는 식의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정치권 일각에선 특사파견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정홍원 국무총리는 4월25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현재로선 특사를 고려할 시기가 아니다"라면서 이 같은 여론을 일축했다. 이러자 '대북 강경정책으로 일관했던 전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비난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북한마저 박 대통령을 겨냥해 "청와대 안방주인은 공식석상에서는 우리더러 북남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돌아앉아서는 더러운 인간추물들을 동원하여 삐라까지 살포하는 것으로 동족대결을 추구하는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고 비난했다. 


지금이 신뢰프로세스의 '신뢰' 회복 기회


남북이 강대 강 대결을 펼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존재감을 잃어갔다. 사실 집권 이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박근혜가 집권하면 북한과의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존재했다. 대결일변도의 정책을 펼쳤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는 달리 박근혜의 대북관이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02년 북한을 방문해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상설시설 설치를 제안했고, 김 국방위원장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박 대통령은 2005년 "김 위원장과의 약속을 대부분 지켰다"면서 한국은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외교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공개된 비화에 따르면 故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가 전향적인 대북관을 가졌다고 판단해 박근혜를 새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 물망에 올렸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자신이 김대중-노무현도 이루지 못했던 남북간 신뢰구축을 자신이 이루겠다는 정치적 야심의 소유자였고 이 같은 야심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의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의 양상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실체에 의구심을 던지게 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북한이 불편해했던 한 · 미 합동 군사훈련은 4월30일 종료될 예정이다. 또 개성공단 남측 인원은 철수시켰지만 북한과의 대화창구는 계속 열어 놓기로 결정했다. 


5월 초엔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방미기간 동안 동북아 다자간 평화협상 구상인 '서울 프로세스'를 제안할 계획이다. 만약 이 기간 동안 콘텐츠를 보강하지 못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또 한 번 위기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주도권마저 상실할 것이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신뢰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