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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제임스 본드, 세계화를 사랑한 스파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는 역사상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첩보 액션극이다. 이 시기는 제임스 본드 같은 첩보원들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냉전 종식은 첩보원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으로 다가왔다. 실제 수많은 제임스 본드들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자신이 몸 담았던 정보기관으로부터 제거 당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역설적으로 세계화 시대에 더욱 걸맞는 캐릭터다. 냉전 시절 제임스 본드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웠고 임무를 마치면 미끈한 여자들(본드 걸)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그가 싸웠던 상대는 '악의 제국' 소련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의 주적은 '스펙터'라는 유령 조직이었다. 스펙터는 세계도처에서 암약하면서 핵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소련을 동시에 패망시킨 뒤 무주공산이 된 세계를 접수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영국 정보부(MI6)는 스펙터의 음모에 맞서기 위해 제임스 본드를 급파했다. 



이제 냉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냉전 종식이 세계평화로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질서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져만 갔다. 소련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 군부의 강경파(골든 아이), 거대 마약조직(라이선스 투 킬), 세계 여론을 틀어쥐려는 언론재벌(투모로우 네버다이), 원유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러시아 마피아(언리미티드) 등등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세계 도처를 활보했다.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초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제임스 본드는 '국가'의 경계선을 뛰어 넘어 활개 치는 악의 세력들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사실 이런 임무는 전혀 낯설지 않다. 제임스 본드는 냉전시절에도 초국적 네트워크를 지닌 악과 상대한 경력이 있어서다. 


제임스 본드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훨씬 강력한 몸을 입게 됐다. 숀 코네리, 조지 레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돌튼 등 이전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들이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 면모를 일신한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분한 피어스 브로스넌과 다니엘 크레이그는 엄청난 완력을 뿜어낸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는 첫 출연작인 '카지노 로얄'과 이어진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근육질의 몸매와 폭발적인 액션연기를 보여준다. 과거의 007시리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살짝 모습을 드러낸 '초국적 악의 네트워크'


세계화 시대에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실체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이들의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들의 음모는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세계 도처에서 활보하며 세계 지배를 꿈꾸는 조직은 '퀀텀'이었다. 이들은 볼리비아에서 군부 쿠데타를 획책하는 한편, 미국에겐 석유채굴권을 양보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이들이 정말로 장악하려는 건 바로 물이었다. CIA는 석유에 솔깃한 나머지 수자원을 장악하려는 이들의 음모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지금은 재화와 용역, 자본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시대다. 이런 흐름을 장악해 세계지배를 노리는 악의 무리들 역시 지구촌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퀀텀의 실력자인 화이트는 이런 말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우린 어디에든 있어 !


퀀텀의 음모는 현재 진행형이다. 제임스 본드는 이에 맞서 지구촌을 마음껏 누비며 악의 무리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제임스 본드, 그는 세계화를 사랑한 스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