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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다크나이트 라이즈] 정의수호, 투쟁, 그리고 순교....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

The Dark Knight Rises 
9.7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톰 하디, 리암 니슨, 조셉 고든-레빗, 앤 해서웨이
정보
액션, 범죄 | 미국, 영국 | 165 분 | 2012-07-19
글쓴이 평점  


정의수호, 투쟁, 그리고 순교.... 

배트맨 시리즈 완결편 '다크나이트 라이즈'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연다. 이제 배트맨 시리즈를 떠나보내야 한다. 마지막을 잘 장식해줘야 한다는 압박이 무척 심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3'이란 수자는 우주와 세상을 의미하는 완전수다.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며, 천지만물은 천(天)·지(地)·인(人) 삼재로 이뤄져 있다. 배트맨 시리즈의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는 완전수로 대단원의 결말을 맺는다. 도입부부터 마지막이라는 복선이 짙게 깔려있다. 


이 작품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양한 코드가 촘촘히 얽혀있다. 코드 해독은 일단 나중으로 미루자. 먼저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3부작을 통해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 영화로 헐리웃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올해 41세로 역대 최연소다. 사실 그의 연출력은 '메멘토'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지닌 헐리웃 메이저 스튜디오의 지원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다름없었다. 


출연진들의 연기 역시 훌륭했다. 크리스천 베일을 주축으로 한 출연진들은 모두 자신의 배역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타이틀 롤인 브루스 웨인 / 배트맨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력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농익어 갔다. 


사실 그는 배트맨 시리즈와 함께하는 동안 수차례의 위기를 맞았었다. 전작인 '다크나이트' 개봉을 즈음한 시기엔 어머니와 누이를 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을 찍으면서는 막말 파문이 불거져 연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2010년 '파이터'에서 열연을 펼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번 작품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브루스 웨인 / 배트맨 역은 어떤 측면에서는 베일 자신의 연기인생과도 맞닿아 있다. 


조연들의 연기도 빛났다. 크레인 역의 킬리언 머피, 미란다 역의 마리온 꼬띠아르, 베인 역의 톰 하디, 블레이크 형사역의 조셉 고든 레빗 등은 놀란 감독과 최소한 한 번 이상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출연진들은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무엇보다 톰 하디가 연기한 베인은 배트맨의 파워를 압도했다. 베인의 연이은 주먹에 휘청이는 배트맨의 모습은 관객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톰의 연기는 불을 뿜었다. 


기존 출연자인 마이클 케인(알프레드), 모건 프리맨(루시우스 폭스), 개리 올드맨(짐 고든)의 연기력은 이제 거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모습이다. 특히 대배우 마이클 케인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영화 초반 알프레드는 주인인 브루스에게 보통사람처럼 살 것을 권한다. 자신의 손으로 주인을 묻을 수 없다면서. 주인을 부여잡고 충심을 표하는 그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마이클 케인은 원숙한 연기로 관객들의 누선을 자극한다. 





배트맨 시리즈의 묘미는 배트맨이 사용하는 신무기들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뱃 모빌의 위용이 눈길을 끌었다. 속편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뱃 파드'를 타고 조커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뱃 파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과시한다. 긴 망토를 휘날리며 고담시를 질주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매혹 그 자체다. 신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루시우스는 브루스에게 '더 배트'를 선물해준다. 더 배트는 베인 일당과 접전을 벌이는 대목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라이즈', 처음과 끝은 통한다


이제 영화의 메시지를 다뤄야 할 차례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첫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간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는 이런 번민 속에서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전세계를 떠돌며 방랑한다. 이러던 차 라즈 알 굴이 이끄는 '어둠의 형제들(The League of the Shadows)' 휘하에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라즈 알굴 일당은 유사 이래로 심판자의 역할을 자처해온 무사 집단이었다. 이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바로 심판이다. 그들에게 자비란 없다. 냉혹한 심판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브루스 웨인의 고향인 고담시를 심판대에 올린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이들의 정의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의 정의란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선은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이 라즈 알 굴과 결별을 택하게 만든 동기로 작용한다. 브루스 웨인이 밤마다 배트맨으로 변신해 악당들을 소탕하는 이유도 라즈 알 굴 일당과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라즈 알 굴 일당은 집요했다. 라즈 알 굴은 베인이라는 화신을 입고 고담시 정복에 나선다. 베인은 고담시의 공권력을 무력화 시킨 다음 공포정치를 실시한다. 배트맨도 베인에겐 역부족이다. 수호신을 잃은 고담시는 무법천지로 돌변한다. 


배트맨의 대척점에 선 베인을 악한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보는 시각은 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어서다. 베인은 지하세계부터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둠의 힘을 다진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고담시의 부(富)를 해체시키는 일이었다. 


하비 덴트 검사와 배트맨의 활약 덕분에 범죄는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부는 여전히 소수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고 공권력은 소수 기득권을 지켜주는데 급급했다. 베인은 이 같은 질서를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그가 고담시의 증권 거래소를 턴 대목은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영화 속 증권 거래소는 전세계의 부가 집중돼 있는 월스트리트라는 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배트맨은 베인의 위력에 눌려 날개가 꺾인다. 최대 위기 상황이다. 고담시의 운명도 촌음을 다투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하지만 그에겐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있었다. 무법천지로 돌변한 고담시를 구원해야 하는 소명의식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으로 작용한다.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심판자적 결의로 뭉친 베인과 구원자적 소명으로 가득한 배트맨은 고담시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접전을 벌인다. 베인이 구약성서라면 배트맨은 신약성서다. 배트맨은 심판론에 맞서 구원의 메시지를 던지고 스스로 순교자의 길을 선택한다. 


더 배트를 타고 자칫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길을 떠나는 배트맨의 얼굴엔 비장감이 감돈다. 비장미 서린 그의 얼굴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정의의 사도로서 고담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킨 영화는 많았다. 배트맨에 앞서 개봉된 '어벤져스'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오락적 요소는 '어벤져스'나 기존에 선보인 작품이 더 뛰어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배트맨 시리즈는 단순한 만화 캐릭터에 심오한 메시지를 불어 넣는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조커, 베인 같은 초현실적인 캐릭터들을 현실로 끌어들인 솜씨는 놀랍기 그지없다. 배트맨, 조커, 베인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길을 거치면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전작 '다크나이트'에 이어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만나기까지 4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토록 심오하면서도 오락적 재미까지 갖춘 슈퍼 히어로 영화를 다시 보려면 또 다른 4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배트맨이여, 영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