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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배트맨 다크나이트] 영웅의 자리를 반납한 슈퍼 히어로



다크 나이트 (2009)

The Dark Knight 
9.1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마이클 케인, 게리 올드만
정보
액션, 어드벤처 | 미국 | 152 분 | 2009-02-19


배트맨 다크나이트] 영웅의 자리를 반납한 슈퍼 히어로 

배트맨의 활약상, 그리고 법과 현실의 괴리


배트맨은 고담시의 수호성인이다. 그에게 갑자기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난다. 바로 조커라는 이름의 악당이다. 쭉 찢어진 입가, 분칠한 얼굴, 기분 나쁘게 다셔대는 입맛.... 이런 몰골에 걸맞게 그가 저지르는 악행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나쁜 짓 하는 악당으로 폄하하기엔 이르다. 그는 무엇보다 남다른 정치철학의 소유자다. 그는 하비 덴트 검사에게 스스럼없이 무정부주의자임을 고백한다. 그가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회가 모든 성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조커에게 배트맨은 최대 라이벌일 수밖엔 없다. 


배트맨은 정의 사도를 자처하며 고담시를 지배하는 악을 뿌리 뽑고 온전한 법질서를 확립하고자 동분서주한다. 이에 맞서 조커는 모든 어둠의 세력을 규합해 배트맨을 궁지에 몰아 붙인다. 그가 노리는 대상은 또 있다. 고담시의 검사인 하비 덴트와 역시 검사이자 하비 덴트의 연인인 레이첼이다. 


하비 덴트는 남다른 정의감으로 사회악 척결에 앞장선다. 레이첼은 그런 모습이 좋다. 하비 덴트는 가면만 쓰지 않았지 배트맨이나 다를 바 없다. 브루스 웨인 역시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커가 하비 덴트의 목숨을 노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정의감과 복수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배트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8년 작 '배트맨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액션활극으로 치부하기엔 참으로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리는 배트맨은 법 냄새를 물씬 풍긴다. 전작인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의 기원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유년의 브루스 웨인은 악당의 손에 부모님을 잃는다. 그는 범죄가 들끓는 고담시의 현실에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런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부패에 쪄들대로 쪄들어 정의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거물급 범죄자들을 붙잡아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했어도 정의실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 자들은 승률 높은 변호사를 앞세워 법망을 유유히 빠져 나간다. 이 자들은 또 다시 거리를 활보하며 악행을 저지른다. 거듭되는 악순환 속에 정의실현은 요원할 뿐이다.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살해를 눈앞에서 목격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담시를 지배하는 악의 연결고리에 일찍 눈뜬다. 그는 거대한 악의 실체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이후 밤마다 배트맨으로 변신해 고담시의 악을 소탕하는데 앞장선다. 


하지만 배트맨의 활약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다.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의감의 기저엔 악에 의해 희생당한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 여전히 불타오른다. 배트맨은 정의감과 복수심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벌이는 것이다. 이렇듯 배트맨이란 캐릭터 속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스며 있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도 배트맨의 고뇌는 계속된다. 브루스 웨인은 젊고, 유능하며, 정의감 가득한 하비 덴트를 눈여겨 본다. 하비 덴트가 정의를 책임져 준다면 배트맨의 존재이유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비 덴트 혼자서 악을 일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조커까지 등장해 그의 목숨을 노린다. 브루스 웨인은 다시금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동원해 조커와 맞선다.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에서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뒤바꾸며 관객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시켰다. 일직선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은 시간이 그의 손을 거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졌다. 배트맨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과 함께 작업한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에서도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반면 이 작품 '다크 나이트'에서는 놀란의 전작들에 비해 시간여행의 묘미는 다소 반감돼 보인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호흡이 무척 가쁘다. 하지만 시간이 큰 굴곡 없이 흘러 오히려 지루할 정도다. 그러나 배트맨의 능력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데다 스케일도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특히 시각적인 요소가 뛰어나다. 


게다가 지난 2008년 1월 약물과용으로 타계한 故히스 레저의 연기는 영화적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조커는 보기만 해도 소름끼친다. 하지만 더 이상 고인의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커의 연기 동작 하나하나에서 불현 듯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인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배트맨은 스스로 영웅이기를 포기한다. 하비 덴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다. 이런 영웅 놀이와는 무관하게 고담시는 악으로 넘쳐 난다. 법질서 확립은 그저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배트맨은 영웅의 자리를 반납했다. 하지만 고담시의 암울한 현실은 그를 불러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둠의 기사(다크 나이트)' 작위가 주어진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