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ine Review

[007 스카이폴] 새 시대의 옷으로 갈아입은 제임스 본드

[007 스카이폴] 새 시대의 옷으로 갈아입은 제임스 본드 


007 시리즈의 매력은 첩보원들끼리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기발한 첨단무기, 그리고 세계적인 명승지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산토리니는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지만 여기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건 007 시리즈 덕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007 시리즈 최신작 '스카이폴(Skyfall)'은 무척 영국적이다. 터키와 중국의 상하이, 마카오가 잠깐 화면에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의 모든 주요 임무는 영국에서 이뤄진다. 런던의 지하철(Underground)을 한 번이라도 타본 기억이 있다면 악당 실바와 제임스 본드가 벌이는 지하철 추격신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스카이폴'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전직 영국 정보부(MI6) 요원 실바가 작전 중 자신을 버린 M(주디 덴치)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오프닝은 언제나 그랬듯 제임스 본드가 활발하게 작전을 펼친다. 특이한 점은 제임스 본드 혼자가 아닌 동료 요원 이브(나오미 해리스)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브는 제임스 본드를 지원하려다 그만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야 만다. 이 대목은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한다. 


이 작품의 연출자는 '아메리칸 뷰티'(1999), '로드 투 퍼디션'(2002)을 연출한 바 있는 샘 멘데즈. '배트맨' 시리즈의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샘 멘데즈의 영화에서는 문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두 감독 공히 영문학도이기 때문이다. 샘 멘데즈의 '로드 투 퍼디션'은 갱스터 영화다. 갱스터 영화는 총탄과 함께 'F'로 시작하는 욕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샘 멘데즈의 '로드 투 퍼디션'에서는 이런 욕설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압운을 살린 대사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준다.


액션 활극에 피어오르는 문학의 향취 


샘 멘데즈는 스파이 액션활극 '스카이폴'에도 문학의 향기를 입힌다. 전직 정보요원 실바(하비에르 바르뎀)는 마카오 인근의 한 섬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뒤 복수의 집념을 불태운다. 세상과 동떨어져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설정은 폴란드 출신의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속(Heart of Darkness)'의 모티브에서 빌려온 것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역시 '어둠의 속'의 모티브를 빌어 완성된 영화다]


MI6는 실바의 복수위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정부 당국은 이참에 정보기관의 역할을 위축시키려 한다. M은 이에 맞서 정보기관의 존재이유를 강변한다. 이때 M은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의 '율리시스'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비록 잃은 것도 많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도다.

이제는 비록 지난 날 

하늘과 땅을 움직였던

그러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우리로다.


한결같이 변함없는 영웅적 기백,

세월과 운명에 의해 쇠약해졌지만 

의지는 강하도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


M이 이 시를 낭독하는 대목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순간이다. 실바는 M을 노리고 제임스 본드는 M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숨 막힐 듯 전개되는 시퀀스에 흐르는 시는 영화의 품격을 더한다. 


007시리즈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007시리즈야 말로 명실 공히 첩보액션물의 원조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본' 시리즈에 밀려 퇴색한 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는 냉전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갈등하던 시절 제임스 본드는 미-소간 전쟁을 부추겨 세계를 지배하려는 '스펙터'의 음모에 맞섰다. 그러나 냉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동시에 제임스 본드의 존재의미도 희미해졌다. 007시리즈의 퇴조는 이 같은 시대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50주년을 맞아 007시리즈는 새 단장을 했다. 이미 제임스 본드 역할을 소화할 배우로 람보를 방불케 하는 완력의 소유자 다니엘 크레이그를 기용했다. 국장 M도 여성에서 남성으로 교체했다. 머니페니와 Q도 다시 등장시켰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듯 머니페니는 금발 미녀에서 흑인으로, Q는 공학자에서 첨단 IT 기술자로 캐릭터를 바꾼 것이 이채롭다. 


21세기 정보전쟁에선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잠옷 바람으로도 제임스 본드 10명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주역은 지상군이다. 치열한 정보전에서도 온 몸을 내던지는 정보요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50주년을 맞아 새 단장을 마친 007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가 크다.




007 스카이폴 (2012)

Skyfall 
6.8
감독
샘 멘데스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베레니스 말로히, 나오미 해리스
정보
액션 | 영국, 미국 | 143 분 | 2012-10-26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