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블록버스터로 전락해버린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의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임팩트 떨어져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새 시리즈(reboot)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장안의 화제다. 미국에선 개봉 하루 만에 약 3,500만 달러(약 397억원)을 벌어들였고, 한국에서는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가히 폭발적인 흥행몰이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의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이 나온 때는 1961년이니까 스파이더맨은 51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사랑을 받고 있는 레전드급 캐릭터인 셈이다.
원작이 처음 나왔을 때 마블 코믹스는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를 못 마땅하게 여겼다.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액션 만화다. 그런데 주인공인 피터 파커는 초능력을 갖기 전 동급생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회사의 불만은 슈퍼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이 왜 하필이면 왕따냐는 것이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스파이더맨을 살린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현실의 왕따들이었다. 이런저런 시달림에 괴로워하던 미국 전역의 왕따들이 피터 파커에게서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다.
피터 파커는 삼촌의 손에 자랐고, 학교에서는 잦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이러던 어느 날 파커는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된다. 파커는 초능력에 힘입어 자신을 괴롭혔던 되먹지 못한 놈들을 차례로 응징하고 메리 제인과 로맨스를 나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이 세상 모든 왕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스파이더맨이 반세기 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사실 원작자인 스탠 리 조차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파이더맨이 5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사랑 받을 줄은 몰랐다고 털어 놓았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스파이더맨이 초능력을 선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파커는 초능력이 생기자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때 삼촌 벤은 파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넨다. 여기서 아주 멋진 대사가 등장한다. 스탠 리는 자신이 이런 멋진 대사를 만들었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란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샘 레이미의 오리지널은 이 같은 원작의 감수성을 잘 살려 슈퍼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그렇고 그런 액션활극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데 성공했다. 피터는 정의의 사도로 변신해 종횡무진 활약상을 펼친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연인인 매리 제인을 사이에 두고 절친인 프랭크와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세 주인공은 성장통을 겪고 이런 아픔은 세 사람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킨다.
오리지널의 느낌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이번에 선 보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오락에만 치중한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는 전형적인 '엄친아'다. 여자 친구인 그웬 스테이시는 파커의 지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나눈다. 샘 레이미 버전에서 가정사로 인해 상처 입은 메리 제인이 왕따로 괴로움을 겪는 피터와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며 사랑을 키워 나가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벤 파커의 비중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오리지널에서 벤은 잠깐 등장하지만 아주 강렬한 대사로 피터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리부트 버전의 벤 파커는 그냥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삼촌일 뿐이다. 더구나 피터 파커가 슈퍼 히어로로 성장하는 과정은 상투적인 어법으로 얼버무려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키고야 만다.
더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다. 스파이더맨의 리부트 버전은 물량공세를 앞세운 블록버스터로서는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진짜 영화적 재미는 샘 레이미 버전이 한 수 위였음을 드러내줬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는 내내 샘 레이미 버전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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