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원리와 시민도덕이 충돌할 때
담배회사인 브라운 & 윌리엄슨사에서 연구 개발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제프리 위겐드 박사는 회사가 담배의 유해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은폐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회의감을 이기지 못해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직 후에도 고민은 이어진다.
그는 몇 날을 고민한 끝에 언론에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CBS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의 로웰 버그만 프로듀서에게 사태의 전말을 낱낱이 밝혔다. 버그만 프로듀서는 경악한다. 버그만은 즉각 브라운 & 윌리엄슨의 비리를 폭로하는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간다.
회사가 이 같은 움직임을 좌시할리 없다. 회사의 대외 이미지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프로그램의 방영을 막는다. 동시에 제보자인 위겐드 박사에게 가공할 협박을 가한다.
회사는 위겐드 박사가 무심코 저지른 실수까지 들추어내며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는 회사의 압박에 몸서리를 친다. 버그만 프로듀서 역시 고초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방송사 경영진들은 대기업과의 법정 분쟁을 피하고자 버그만에게 취재중단 압력을 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담당 기자인 마이크 월레스마저 복지부동으로 일관한다. 자칫 자신의 경력에 누가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내부고발자를 다룬 마이클 만 감독 1999년작 '인사이더'
위겐드 박사와 버그만 프로듀서는 현실의 벽 앞에서 심한 번민에 휩싸인다. 이런 번민은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외압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이내 두 사람은 골리앗과도 같이 버티고 서 있었던 회사와 맞서 진실을 알리는 데 성공을 거둔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이클 만 감독의1999년 작 '인사이더(Insider)'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나 담배의 중독성, 그리고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가 널리 인식돼 있는 상황이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제고는 사실 위겐드 박사의 내부고발에 힘입은 결과다.
삼성의 실체, 내부자의 폭로로 드러나
지난 2007년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김 변호사는 위겐드 박사와 마찬가지로 내부자였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곧 권력과 동의어다. 삼성이 파산하지 않는 한 권력이 교체 될 일도 없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권력이다. 반면 김 변호사의 처지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더구나 삼성은 사태 초기부터 특유의 가공할 로비력과 정보력을 앞세워 그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기업에 몸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이 보편적 사회윤리와 충돌을 일으켰을 때 이를 해소시켜줄 해결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학교, 종교·사회단체 등 여러 조직체에 속해 있는 개인들 역시 언제든 봉착할 수 있는 문제다. 더욱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선 개인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이 생계를 보장해주니까,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은혜로운 복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주니까, 또 혼자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날뛰어봐야 세상은 달라질 것이 없으니까 덮고 넘어가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 무지몽매한 대중들의 눈을 뜨게 하고 실종된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특히 자신이 속한 조직이 신념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개인의 가치관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형성된다. 한편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 그리고 제반 사회단체들은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단위들이다. 개인과 제반 사회조직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합의된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 기업이나 종교·사회단체의 행태가 사회적 신념체계를 무색케 할 때 누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가?
내부고발은 조직에 대한 배신?
이 대목에서 내부자의 역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조직의 내부사정은 내부자가 가장 잘 안다. 사법당국도 특정 기업이나 단체를 내사 할 때 속사정을 가장 잘 알 만한 내부자를 골라 집중 추궁한다.
무엇보다 '공익'이란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내부자에 의한 내부사정의 노출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삼성의 실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내부자에 의한 고발행위를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김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고발했을 때 그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삼성의 돈으로 호의호식한 장본인이 내부 비리를 고발해 1등 기업 삼성의 대외위상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였다.
2010년 서강대에서 불거진 모 교수의 연구비 횡령의혹도 동일선상에 놓인 문제다. 학교 측은 비리 교수는 물론 그 교수의 비리를 고발한 다른 교수에게도 동등한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 교수의 비리고발이 해교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경향은 교회 같은 종교단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제프리 위겐드 박사와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비리 고발이 조직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을까? 오히려 사회의 시민도덕이 건강성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조직의 존립이 사회정의 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할 가치인가?
과연 한국 사회가 이 같은 문제의식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긍정일까, 부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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