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이다
국내 일등신문에서 불거진 사진 조작 논란에 붙여
'스파이더 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다. 하지만 보통 때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그의 생계수단은 사진이다. 그가 찍는 사진의 주제는 다름 아닌 스파이더 맨의 활약상. 우스갯소리로 셀카 찍어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에게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한다. 바로 프리랜서 사진작가 에릭이다. 그는 스파이더 맨을 취재하기로 결심한다. 스파이더 맨에게서 인정 받아 당당히 최고의 포토 저널리스트로 등극하기 위해서다.
이러자 피터 파커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셀카 사진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데 이를 빼앗기면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에릭과 피터는 불꽃 튀는 생존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화를 부르고야 만다. 에릭이 라이벌 의식에 사로잡혀 사진을 조작한 것이다. 그의 사진은 뉴욕의 일간지 일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조작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퇴출된다.
사진기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저마다의 필살기로 생존을 모색한다. 최근 카메라 제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선은 모호해졌다. 이젠 아무렇게나 눌러도 작품이 찍힐 정도다. 이렇게 되자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기에 이른다.
사진가들은 정글과도 같은 생태계 속에서 확실히 뜨기 위해 특별한 그 '무엇'에 집착한다. 이런 집착은 종종 일그러진 행태로 귀결되기도 한다.
사진 조작과 저널리즘의 윤리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프레임 구성 과정에서 사진가의 의도가 은연중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사진이 너무나 빠른 시간에 찍히는 탓에 독자는 물론 심지어 사진가조차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화학약품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사진을 조작하는 건 다음 수순이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그 어떤 눈도 순수한 눈은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하지만 사진의 인위적인 조작은 저널리즘의 윤리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2003년 LA 타임즈 소속 사진기자였던 브라이언 월스키는 바스라 인근에서 영국군병사가 이라크 민간인을 제압하는 사진을 송고했고, 신문은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얼마 안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자 LA타임즈는 즉각 사과성명을 내는 한편 월스키를 해고했다. 사실 포토 저널리즘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사진치고 조작 의혹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남의 나라만의 일일까?
국내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태풍 소식을 보도하면서 3년 전 사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신문의 조작의혹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뉴스를 전하면서 사진 보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현장 사진을 과도하게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저널리즘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 전달이다. 네이팜탄에 그을려 벌거벗고 울부짖는 베트남 소녀를 찍은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또 삶의 무게에 지친 이주민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경제대공황이 몰고 온 파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감정만 극대화시키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사진은 진실을 드러내는 기록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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