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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배트맨, 현실과 초현실 사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

The Dark Knight Rises 
8.3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게리 올드만, 앤 해서웨이, 톰 하디
정보
액션, 범죄 | 미국, 영국 | 165 분 | 2012-07-19
글쓴이 평점  


배트맨, 현실과 초현실 사이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 즉 팀 버튼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조엘 슈마허의 엉망진창 시리즈는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 역시 초현실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고담이라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은 놀랄 만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 배트맨 수트 & 뱃모빌 



배트맨의 장비는 웨인 인더스트리 산하 응용 과학부서에서 만든 것들이다. 브루스 웨인은 오랜 방랑과 수련의 세월을 보내고 회사에 복귀한다. 그가 일자리를 얻은 부서가 바로 응용 과학부서다. 기술이사인 루시우스 폭스는 브루스 웨인이 필요로 하는 장비 일체를 지원해 준다. 


배트맨 수트는 웨인 인더스트리에서 원래 군용으로 만든 것인데 창고에 썩고 있었다. 브루스가 이유를 묻자 폭스가 이렇게 답한다. "군인의 안전보다는 수지타산이 먼저"라고. 


미국의 기업들은 군과 밀접히 연관을 맺고 있다. 비행기 제조사인 보잉사는 폭격기를 만들고, 자동차 회사인 GM은 군용 험비를 만들어 납품한다. 배트맨이 타는 뱃모빌 역시 군용 텀블러를 배트맨 컨셉에 맞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텀블러의 원래 용도는 교량건설용이었다. 


2] 조커의 고담 종합병원 폭파 



배트맨 시리즈 2편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고담시 종합병원 입원환자를 인질로 잡는다. 이러자 브루스 웨인은 알프레드에게 경찰 요원 가운데 친인척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실제 고담시 경찰국 라미레즈 요원은 조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레이첼을 조커에게 넘긴다. 라미레즈는 하비 덴트에게 어머니의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왜 그랬을까? 답은 의료보험에 있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다. 이런 탓에 행여 가족 가운데 암 같은 질병에 걸려 치료를 받을 경우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라미레즈 요원이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커는 이렇듯 현실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고담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데 성공한다. 


3] 증권거래소 습격 사건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은 지하세계부터 장악해 나간다. 그러다가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했는지 양지로 튀어 나와 일을 저지른다. 이때 그가 찾아간 장소는 고담시 증권 거래소. 영화 속 증권거래소는 뉴욕을 방문한 이들, 혹은 TV나 영화, 아니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뉴욕시 풍경을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어딘지 금방 알아챈다. 바로 월 스트리트 증권거래소인 것이다. 이곳은 미국은 물론 세계의 부가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9.11테러 이전 뉴욕시의 랜드마크였던 쌍둥이 빌딩은 바로 미국의 경제패권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다름없었다. 알 카에다는 이 같은 상징성을 고려해 뉴욕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다. 베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증권 거래소를 털어 브루스 웨인을 알거지로 만들어 버린다. 베인은 이를 신호탄으로 고담시의 경제권력 해체작업에 나선다. 전세계의 부가 1%로 집중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베인의 증권거래소 습격 사건은 가히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도 맞먹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각각 조커와 베인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같은 오프닝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자칫 만화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 두 악당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