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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일파만파의 파문 일으킨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의 일이다. 당시 콜롬비아는 남미 지역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5 : 0으로 대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회 개막직전, 축구황제 펠레는 콜롬비아를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막상 조별리그에서 콜롬비아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예선 탈락했다. 같은 조에 속해 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자책골까지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사진)는 23세 때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콜롬비아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했던 유망주였다. 4년 뒤 열린 미국 월드컵에서 그는 주전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주최국 미국과의 경기에서 허망하게 자책골을 넣었고, 이 자책골이 빌미가 돼 콜롬비아는 1-2로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콜롬비아의 탈락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콜롬비아 국민들은 선수들을 맹비난했다. 사실 자국민들의 비난여론은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 대표팀이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을 경우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다. 그런데 콜롬비아는 차원이 달랐다. 콜롬비아의 거대 마약 카르텔인 메데인 조직이 선수들을 협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귀국을 주저했고 대표팀을 맡고 있던 마투라나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해야 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는 귀국을 강행했다. 자신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귀국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 괴한으로부터 무려 12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건을 목격했던 에스코바르의 여자친구는 괴한이 총 한 발을 쏠 때 마다 '골'이라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에스코바르의 죽음은 크나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콜롬비아 언론이 '나라 전체가 자살골을 먹었다'며 당혹감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그를 살해한 괴한은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죽음엔 축구 도박조직이 개입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콜롬비아가 유력 우승후보로 점쳐지자 콜롬비아 대표팀에 거액을 배팅했다가 날려버린 도박조직이 분풀이로 에스코바르 선수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콜롬비아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범죄조직을 상대로 진실을 규명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도박에 이은 선수의 파멸, 남의 이야기 아냐

스포츠 도박과 이로 인한 선수의 파멸은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해 프로축구에 이어 올해 프로배구와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잇달아 불거져 해당 종목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 종목의 승부조작 사건 모두 조직폭력배가 개입한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가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몇몇 선수들이 돈의 유혹에 흔들린 것도 사태를 키운 한 원인이 됐다. 

프로축구의 경우 폭력배가 선수를 협박해 승부조작에 가담시켰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로 인해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선수 한 명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선수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집행유예(2년) 처분을 받아 가까스로 형 집행은 면했다. 한편 몇몇 선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검찰 수사결과 프로배구의 승부조작도 프로축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고, 이 불똥은 급기야 프로야구에로 튀기에 이르렀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구단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는 세계다. 실력 외에 다른 어떤 외적 요인이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이런 스포츠계에 승부조작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큰 실망감마저 안겨준다. 다시는 승부조작이 발붙일 수 없도록 엄정한 수사를 검찰에 촉구한다. 선수들 역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