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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시민후보의 당선, 그리고 정당정치의 위기




*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던 10월 26일, 바깥 분위기는 평온했지만 트위터 타임라인은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했다.


투표시간이던 오전 6시부터 오후 3~4시까지 타임라인은 탄식으로 흐르다가 오후 6시를 기해서는 투표를 독려하는 격문으로 빼곡했다. 탄식은 투표율이 정부 여당 지지성향이 강한 강남3구의 투표율이 전체 투표율을 웃돌았기 때문이었고, 투표를 독려한 건 서울을 정부 여당에게 내줄 수 없다는 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상황이 이대로 가다간 정부여당에게 또 다시 서울을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범야권 후보인 박원순 후보의 승리였다. 득표율 차이도 꽤 났다. 박원순 후보는 53.4%의 득표율을 기록, 46.21%에 그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러나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단순히 득표율 차이에 있지는 않았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떠나 기존 제도권 정당의 틀 밖에 있던 시민운동가가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박영선, 나경원)을 차례로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일은 무척 시사적이다.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여러 언론매체들은 이번 보궐선거의 의미를 놓고 수많은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이 가운데 가장 비등한 목소리는 시민후보의 당선이 정당정치를 위축시킬 것이다, 혹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는 분석이다.


각계 전문가들의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는 정당정치 무용론, 혹은 정당정치 위기론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당정치 무용론은 기득권자들의 논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정당정치가 정말 제대로 작동한 적이 있는가를 곰곰이 따져볼 때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정당은 최고 통치권자의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다. 민주화의 열기가 드높았던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제도를 본격 도입하면서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시도됐다. 그렇지만 각 정당은 지역 연고주의에 연명하며 존립해왔을 뿐, 정당이 추구해야 할 고유의 사명, 즉 고유의 정강정책 개발 및 이를 통한 정권획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자살이란 비극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던 한 전직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는지를 기억해 보라.
 

시민후보의 당선이 정당정치의 위기 초래?


또 그나마 있던 정당들도 그때그때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거듭되고, 그래서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정당들은 정파적 이익에 따라 움직였을 뿐, 정당정치로 본연의 역할로 정치를 작동시키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치의 위축, 혹은 위기론이 비등한다. 잘못된 진단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 시민후보가 승리를 거둔 건 정치적 이해해 급급해 이합집산만 거듭했던 정치판에 대한 심판이자 진정한 정당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의 승리다.
 

범야권 시민후보의 승리를 놓고 정당정치 위기 운운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정당정치의 위기는 기존 정당들의 행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지역구 의원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새 당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또 범야권후보를 측면 지원했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어떤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선거 대행업체가 하는 일이지 정당의 일이 아니다"며 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정당정치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전히 정치적 이해에 눈먼 기성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