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레전드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 간 선수들"
프로야구30년 올스타 레전드 이만수 SK와이번즈 감독 대행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리고 이만수 SK와이번스 감독대행은 기록의 사나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깨지지 않는 기록의 사나이’다. 19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던 이만수는 상대인 MBC 청룡의 유종겸 투수가 던진 공을 힘껏 받아쳐 홈런을 만들어 냈다. 프로야구 사상 첫 안타를 첫 홈런으로 장식한 것이다. 홈런으로 얻은 타점 역시 프로야구 최초의 기록이다. 다른 기록들, 이를테면 최다 안타, 최다 홈런, 최다경기 출장 등등의 기록은 언젠가는 깨질 기록이다. 그러나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의 기록은 프로야구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깨지지 않고 또 깨질 수도 없다. 이 영광스런 기록의 주인공이 바로 이만수 감독대행이다.
프로야구 출범 30년째인 올해 7월 23일, 이만수 감독대행은 올스타로 다시 한 번 우뚝 섰다. 프로야구 출범 30년을 기념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관한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10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올스타 레전드'로 뽑힌 것이다.
이런 영광스런 기록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야구인생은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내 몸엔 파란 피가 흐른다"며 아낌없는 애정을 표시했던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지 못했고, 말 그대로 쫓기듯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쫓기듯 건너간 미국에서의 생활이 만만할 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기고 돌아왔다. 첫 연수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즈를 거쳐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서 130년 메이저 리그 역사상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풀타임 코치로 활약했다.
지난 8월 상황은 더 어려웠다. '야신' 김성근 감독은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자 기자들을 불러 재계약 포기의사를 밝혔다. 이러자 구단은 즉각 김성근 감독을 해임하고 2군(퓨쳐스) 감독이던 이만수를 감독대행에 임명해 팀을 맡겼다.
이만수 감독대행으로썬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갑작스런 해임에 강하게 반발했고, 이런 반발여론은 이만수 감독대행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그렇지만 그는 위기에 빠진 팀을 추스려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고, 준플레이오프에서 KIA를 리버스 스윕으로 셧아웃시켰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롯데를 맞아 자신만의 야구를 펼쳐보이며 당당히 팀을 코리안시리즈에 진출시켰다.
올해 SK와이번즈의 코리안 시리즈 진출은 올해로 다섯 번째, 프로야구 30년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스승인 김성근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은 이만수 감독대행이 선수시절에 이어 다시 한 번 '최초'의 기록을 써내려 갔다.
한국과 미국의 야구를 두루 경험하고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만수 감독의 인생 역정은 비단 야구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 먼저 프로야구 30년 올스타 레전드로 뽑히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마디 부탁합니다.
야구인으로서 기쁩니다. 1등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엔 양준혁 선수에게 밀려 2위에 그치나보다 했어요. 양준혁 선수는 인지도가 높잖아요.(웃음) 그렇지만 올스타 베스트10 투표가 인터넷을 통한 팬투표 30%, 기자단 30%, 야구인 40%로 구성됐었잖아요. 인터넷 팬투표에서는 양준혁 선수에게 밀렸지만 기자단과 야구인이 제게 표를 많이 줘 올스타 레전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레전드는 저 혼자만의 힘으로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먼저 은퇴한 선후배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야구장을 찾아요. 할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를 손자에게 해줍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손자는 그 선수들을 모를게 아니에요? 손자는 인터넷을 통해 그 선수들을 찾아봅니다. 그러면서 그 선수들이 손자에게는 레전드가 되는 거에요.
한국 역시 빛도 없이 선수생활을 한 이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프로야구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프로야구 600만 시대, 더 나아가 1000만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진정한 레전드는 바로 그들일 것입니다.
-. 당시 대행님과 활약하던 투수 가운데 지금 현역으로 뛰어도 20승을 할 수 있는 선수를 꼽는다면?
지금 넥센 히어로즈를 맡고 있는 김시진 감독을 꼽고 싶습니다. 저와 김시진 감독은 오랜 기간 함께 배터리 생활을 했었지요. 김시진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슬라이더를 제일 잘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지금 선수로 뛰어도 20승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외에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선수,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선동렬 선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대행님께서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고 귀국하셨습니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야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가장 먼저 꼽고 싶은 문제가 바로 경기장 시설일 것입니다. 야구장 시설이 좋아야 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대전, 광주, 대구 구장이 지금 SK와이번즈의 홈구장인 문학 경기장 수준(수용인원 3만)만 되어도 더 많은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감독으로 있는 2군의 경우, 2군 경기장을 갖춘 구단이 두산, LG, 삼성, 롯데, 넥센 뿐입니다. SK는 강화에 2군 경기장을 짓고 있어서 내년쯤에나 2군 경기가 가능합니다. 한화와 KIA는 경기장이 없는 실정이고요. 경기장 시설이 없다보니 비오는 날이나 주말엔 경기장에서 운동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내년에 가면 SK, KIA, 한화 모두 2군 경기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수들의 프로의식이 없어요. 전 지금 추신수 선수가 뛰고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싱글 A팀인 킨스턴 인디언스로 코치 연수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때 봤던 선수들과 지금 2군 선수들의 프로의식은 극과 극이에요. 미국의 경우,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급여는 월 100만원 밖엔 안됩니다. 식사도 햄버거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경기를 위해서 한국과 같은 선수단 전용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로 10시간을 이동하기도 합니다. 체격이 우람한 선수들이 일반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일단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수입은 물론이고 식사도 스테이크를 대접 받게 되요. 이동은 선수단 전용 비행기로 하게 되고요. 이러다 보니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에 대한 동경이 강하고, 일단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게 되면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요. 메이저 리그 선수들이 타석에서 1루에 갈 때 전력질주를 하고, 공수에서 과감한 허슬 플레이를 펼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미국에 비하면 지금 한국의 2군 선수들이 처한 여건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2군에서 뛰어도 월수입 200만원은 보장되고 또 구단에서 숙식을 제공해 주니까요. 또 선수자원이 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니 열심히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구단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선수를 데리고 있어야 해요. 한 마디로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 오늘의 이만수를 있게 한 지도자를 든다면?
정동진 감독님이에요. 정동진 감독님은 제 고등학교 시절 은사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대구상고와 실업팀이던 제일은행에서 포수를 맡았는데 전설적인 포수로 명성이 자자했죠. 제가 시합하러 서울에 올라갔었을 때, 꼭 선수들을 찾아 격려를 해주셨어요. 감독님은 실업팀에서 은퇴하고 제일은행 차장이던 시절 저를 찾아와 주셨는데, 선수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분이 제일 아끼는 포수 글러브를 선물로 주고 가셨어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겨울에 대구상고 감독님으로 부임해 오게 됩니다. 전 동경하던 분을 감독님으로 모시게 되어 너무 신났었죠. 하루는 감독님이 제게 "널 최고의 선수, 최고의 포수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니 내 말만 잘 따라라"하셨지요. 전 감독님의 말을 군말 없이 따랐습니다. 그러면서 감독님은 제게 일지를 써서 제출하라고 하시더군요. 훈련 내용, 보완할 점, 상대팀과의 경기 내용 등등을 빠짐없이 적으라는 주문이었어요. 처음엔 어떻게 할지 몰라 감독님께 혼이 났었지만 한 달 두 달 하니까 점점 늘더라구요.
제가 2011년 3월 8일, 2군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부임 이후 계속 제가 지도하는 선수들과 상대팀 선수들의 장단점, 지난 해와 달라진 점 등을 계속 기록해 나가고 있어요. 모든 선수들의 파일이 제 노트북 안에 다 있습니다. 벌써 200페이지가 넘어갔어요.
미국에서 코치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매일 같이 기록을 남기니까 시카고 화이트 삭스 단 쿠퍼 투수코치가 와서 그러더군요. "언제까지 그 일을 계속할꺼냐?"면서요. 전 "야구를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 계속할 것이다, 야구가 끝나야 끝난다"고 했죠. 훗날 많은 후배들에게 전수해줘야 하기에 기록을 남겨야 했어요. 책을 내기 위해서 말이죠. 칼럼도 쓰곤 해서 지금까지 수 백개의 칼럼을 썼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운동 포기하고 싶었을 때 글을 썼어요. 그러다 보면 생각들이 정리가 됐어요. 이런 습관을 갖게 한 분이 바로 정동진 감독님이었습니다. 제가 올스타 레전드로 뽑히고 나서 정동진 감독님에게 바로 전화를 했었죠. 감독님은 좋아하시더군요.
-. 미국 생활에서 어려웠던 점은?
미국 가기 직전 사실상 일자리를 잃은 상태였었어요. 그때 당시 아내 몰래 대출 받아 건물을 하나 사놓았어요. 그런데 마침 IMF가 터지는 바람에 대출을 갚을 길이 막막해졌었어요. 건물은 사놓았는데, 일자리를 잃어버려 난감했었지요. 그래서 아이들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해 주려고 적립해 놓은 돈 2000만원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그런데 실제 미국으로 가보니까 말이 안 통하는 거에요.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대구에서 영어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긴 했어요. 그렇지만 당시엔 지금처럼 원어민 교사가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건 아니어서 한국에서 가르쳤던 선생님의 발음과 현지 발음이 너무나 차이가 나더군요. 제가 미국으로 갔을 때가 1998년이었는데 거의 벙어리처럼 살았었습니다. 동료들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대꾸를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외로웠어요. 숙소에서 샤워기 틀어놓고 울기도 했어요. 정말 아침이 오는 게 싫었어요. 제 에이전트가 말도 없이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질책을 하더군요. 이렇게 생활하려면 왜 미국으로 왔냐면서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전 새로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는데 아무 것도 배운 것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지요.
-. 선수생활 할 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가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생활 하면서 우승했던 경험이 1985년 통합우승 말고는 없어요. 제가 선수 생활할 때만 해도 삼성의 인기는 전국에서 최고였어요. 그렇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요. 경기장을 찾은 많은 팬들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로 인해 은사님이신 정동진 감독님부터, 지금 SK 1군 감독인 김성근 감독님 등등 숱한 지도자들이 옷을 벗을 수밖엔 없었고요. 팬 여러분께 그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 야구선수로서 행복한 점이 있다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삽니다. 추억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요. 전 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줘서 행복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전 미국에서 배웠던 야구를 한국 야구에 접목시켜 보고 싶어요. 전 어린 시절부터 10년을 단위로 계획을 세워나갔었습니다. 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때가 열 네 살이었어요. 전 앞으로 10년 동안 4시간만 자고 운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지요. 잠을 줄이다 보니 처음엔 힘들었어요. 코피가 날 때도 있었죠. 1년 하니까 효과가 안 나타났어요. 2년째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3년째가 되니까 효과가 나타났어요. 완전 천하무적이 돼 있었습니다.
지금 지도자로서 10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제가 생각할 때 제 목표치에 거의 반쯤 접근했어요. 무엇보다 선수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지도자로서 실현해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 원래 인터뷰는 2군 감독이던 지난 7월 20일 이뤄졌는데, 서두에 최근 내용을 추가해 업뎃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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