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프로젝트'가 그토록 불편할까?
다큐멘터리 영화 하나가 그토록 불편할까? 정지영 감독이 제작하고 백승우 감독이 연출한 '천안함 프로젝트'를 보면서 든 의문이다.
제작진이 들으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 이 아이템은 PD수첩이나 추적60분 같은 언론사가 나서줘야 할 아이템이었다. 언론사가 취재를 했다면 더욱 짜임새 있고 현장감 넘치는 리포트가 나왔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 상황은 말이 아니다. 지금은 진실을 보도했거나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기자 고유의 업무인 취재에서 배제되는 시절이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쌍용자동차 사태의 이면을 파헤친 르포르타쥬를 써야 하고 영화 연출자들이 나서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딱 하나, 바로 소통이다. 영화는 사건에 관한 정부 발표, 즉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다'는 발표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도 군이 내놓은 백서의 대목에 대해 현장 전문가의 반론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그러면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소통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아주 평범한 결론을 내린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압박을 받더니 개봉하고 나서는 석연찮은 이유로 멀티플렉스 상영관 상영이 중단되고 IPTV에서도 퇴출됐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은 영화에서도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니까 압력을 가했다고 일갈했다. 이런 압력은 영화 개봉 후 더욱 전방위적으로 가해져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
상영에 반대한 이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 영화가 뭐가 그리 불편하냐?’고
북한을 이롭게 할 수 있어서? 적어도 영화 내용 가운데 북한을 찬양, 고무하거나 이롭게 하는 대목은 한 군데도 없다. 군을 흔들 수 있어서? 영화에 자세히 소개된 재판내용을 보건데 군을 흔들기보다 오히려 군이 무언가를 숨긴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어서? 유족들을 비방하는 대목은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이 명쾌하게 규명되면 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희생자들을 자랑스러워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뭐가 그리 불편하고 힘들어서 상영을 못하게 막을까?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합리적 의심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꽉 막힌 사회란 말인가? 천안함 사건에 다소 유보적인 견해만 보여도 이제는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는 그런 감시사회가 됐단 말인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이 영화를 불편해 하는 이들이 정말 영화나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지난 1958년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소련 당국은 파스테르나크에게 압력을 가해 수상을 고사하게 만들었다. 소련 작가회의도 파스테르나크를 제명하는 한편 그의 작품에 대해 발매금지 조치를 취했다. '닥터 지바고'가 볼셰비키 혁명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니키타 흐루시초프였다. 그는 말년에 이 일이 후회된다면서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무어냐면 문제의 책인 '닥터 지바고'를 읽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검열과 인민재판이 횡행하던 옛 소비에트 시절과 비슷하지 않을까?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둘러싼 소동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다.
"이 책(닥터 지바고)을 발매금지했던 것을 후회한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 니키타 흐루시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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