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복음 12장 24절(현대인의 성경)
'록키', '베스트 키드'를 연출한 존 애빌슨 감독의 1992년作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은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이 횡행하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맞선 한 인간의 눈물겨운 투쟁을 그린 감동적인 작품이다. 어릴적부터 백인들에게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있던 영국계 소년 PK는 옥스포드 장학금도 마다하고 흑인들의 편에 서서 백인 지배질서에 반기를 든다.
* 파워 오브 원
혹자들은 이 영화의 메세지가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논거는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지도자가 왜 백인이어야 하나?"는 것이다. 이런 비판논리가 근거가 없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또 다른 인종적 편견에서 기인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인공 PK의 성장과정을 바라보자. 그는 영국계 백인이었다. 이 사실로 인해 그가 다녔던 독일계 학교의 아프리카너 학생들에게 갖은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야 만다. 아프리카너 학생들이 영국인을 증오하는 이유는 영국이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 - 다이아몬드 - 을 강탈해갔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영국은 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너들로부터 다이아몬드 광산을 빼앗았다.[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일컬어 보어 전쟁이라고 칭한다. 훗날 영국의 재상이 될 윈스턴 처칠은 초급장교 시절 보어 전쟁에 참전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 다이아몬드 광산의 진짜 주인은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원주민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다이아몬드에 혈안이 돼 자신들끼리 편을 갈라 싸움질을 일삼는다. PK는 이런 현실의 희생양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PK의 처지도 온갖 박해를 받고 살아가는 흑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도 그나마 백인이기에 운신의 폭이 흑인들에 비해 좀 더 자유로울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를 사랑했던 PK는 성장과정을 통해 서서히 백인들끼리 싸움질이 난무하고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을 떠간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질 특권을 마다하고 흑인들을 위해 온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흐르지만 백인들은 약삭빠르게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갈수록 거세지는 흑인들의 요구에 굴복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흑인들의 보복이 두려웠다. 일순간에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기득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마저 잃어버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흑인들로서도 경제권을 쥐고 있는 백인들을 끌어안아야 했다. 하지만 백인들의 야수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해 각인된 분노와 원한이 문제였다.
넬슨 만델라는 이런 딜레마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어떤 정치적 보복도 없을 것이라고 백인들을 설득했다. 또 남아프리카의 대다수 종족인 줄루족 출신으로 강경노선을 표방한 부텔레지도 끌어 안으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넬슨 만델라의 정치적 노력은 인종간 화합이라는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돌이켜볼 때, PK는 흑백갈등을 해소시키고 인종간 화합을 이룰 최적의 위치에 서 있다. 단지 그의 피부색이 하얗다는 사실로 인해 인종차별이 망령처럼 떠도는 척박한 대지에 비를 뿌려줄 "레인 메이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는 논리는 또 다른 극단에 선 인종주의적 편견에 다름아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PK가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떠가는 과정, 그리고 아프리카너들의 폭력에 맞서 분연히 몸을 던지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게다가 장면 장면 흐르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도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어린 PK가 온 몸을 던져 흑인 합창단을 지휘하는 장면이다.
영국과 독일이 전쟁을 벌어자 PK는 독일계 할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영국군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는 그곳에서 PK는 흑인 기엘피트(모건 프리맨扮)를 만나 권투를 배운다. 기엘피트의 헌신적인 지도에 감동한 PK는 그와 그가 속해 있는 흑인들에게 진심어린 선물을 하나 선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땅한 꺼리가 없어 고심을 거듭한다. 그 와중에 PK는 수용소측에서 순시나온 고위 관리를 위해 음악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PK는 이 음악회를 통해 갖은 박해와 차별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흑인들의 한을 풀어주기로 마음 먹는다. 음악회에 연주될 곡의 가사는 기엘피트가 쓰고 흑인들 특유의 리듬을 살려 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온 몸을 던져 지휘를 한다. 곡 내용인 즉슨....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는 겁많고 비겁한 바보들...."
이 곡을 부르던 흑인들은 신명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백인 간수는 기엘피트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며 곡 내용이 무어냐고 다그친다. 기엘피트는 가사 뜻을 말하고 백인 간수는 이에 격분해 그를 죽이고야 만다.
이제 그 악명 높던 인종차별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남아프리카의 부(富)는 여전히 백인들의 수중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반면 흑인들은 빈곤과 AIDS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 신약성서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백배천배 결실을 맺을 것임을 약속하는 구절이 기록돼 있다. 이 영화 제목 "The Power of One(하나의 힘)"의 모티브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언약과 일맥상통한다. 빈곤과 AIDS로 신음하는 남아프리카에 백배천배 결실을 맺어 줄 작은 밀알 하나가 아쉬운 시점이다.
(2007)
파워 오브 원 (1992)
The Power Of One
- 감독
- 존 G. 에이빌드슨
- 출연
- 스티븐 도프, 존 길거드, 모건 프리먼, 가이 윗처, 사이먼 펜튼
- 정보
- 드라마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프랑스 | 123 분 | 199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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