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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변호인]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 영화 '변호인' 신드롬에 붙여 


영화 '변호인'이 세간의 화제다. 지난 12월18일 개봉한 변호인은 12월31일 현재 522만명의 관객을 동원, 비슷한 시기 개봉한 '어바웃 타임'(279만),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208만)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여론의 바로미터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상에서도 '변호인'은 빠지지 않는 화제거리다. 


'변호인'이 세인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영화적 완성도로 흥행몰이를 주도하는데 있지만은 않다. 이 영화의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는 부산에서 세무업으로 부를 쌓은 변호사 송우석이 시국 사건을 다루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전반부의 이야기 흐름은 유쾌하다. 그러나 송우석이 시대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면서 분위기는 사뭇 장중해진다. 송우석의 내면 역시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요동을 친다.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탁월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인심 좋은 이웃집 아저씨에서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법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연기까지, 송강호는 신들린 듯 송우석을 연기해 낸다. 


국밥집 아줌마로 분한 중견 연기자 김영애의 연기도 관객들의 누선을 자극한다. 특히 실종된 아들을 백방으로 찾아 나서다가 송 변호사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장면, 그리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말 그대로 압권이다. 공안경찰 차 경감을 연기한 곽도원과 주무관 역의 오달수 등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의 이야기를 더웃 맛깔스럽게 해준다. 


그러나 신드롬에 가까운 '변호인' 현상을 설명하기엔 영화적 완성도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 영화가 신드롬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되풀이 되고 있는 슬픈 현실에 있다. 


그때 그 시절로 끝나는 이야기일까?

알려진 바 대로 이 영화는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부림 사건과 이 사건 변호를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지만 영화 전체에서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공안몰이와 정권찬양만이 난무하던 지난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을 그린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자신의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공안사건을 조작해 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런 어둠은 외면한 채 권력만을 바라봤고, 일반 국민들은 경제성장에 도취돼 현실을 외면했다. 


문제는 이런 암울한 현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진화된 형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권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행태가 그때 그 시절의 일일까? TV에서 나오는 정권찬양 일변도의 뉴스를 보고 한숨을 지으며 '지금 제일 못믿을 놈들이 신문이랑 방송이다'며 한탄하는 지방 신문사 언론인의 탄식이 과연 그 때 그 시절의 일일까? 공안사건을 다룬 공로로 승승장구하는 자들이 과연 그때에만 있었을까? 그리고 그 시절 사람들만 경제성장 논리에 매몰돼 정치권력이 저지르는 죄악을 방관한 채 오로지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고, 또 온 몸을 던졌던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변호사 송우석의 모델이 됐던 노 전 대통령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이 사회의 지배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오히려 정치적 보복을 당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 사회는 2007년 '민주적으로' 퇴행의 길을 택했다. 


영화 '변호인'은 그래서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한다. 하지만 눈물만 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건 기껏해야 감정의 배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왜 먹먹하기 그지 없는 영화 속 현실이 정확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그리고 먹먹한 현실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각해야 할 때다. 


한 번의 감정배설로 그치기엔 영화 '변호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변호인 (2013)

The Attorney 
9.6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시완
정보
드라마 | 한국 | 127 분 |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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