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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북-미 화해의 물꼬를 터줄 시원한 덩크슛을 기대한다

1990년대 NBA는 시카고 불스 천하였다. 시카고 불스는 마이클 조던-스코티 피핀-데니스 로드맨 삼각편대를 앞세워 NBA를 평정했다. 


제아무리 천하의 마이클 조던이어도 피핀이나 로드맨의 지원이 없었다면 홀로 튀기 좋아하는 선수로 밖에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LA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말이다. 


조던-피핀의 콤비 플레이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데니스 로드맨은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 시카고 불스 시절의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은 악동 이미지가 강했다. 염색한 머리에 피어싱, 온몸을 휘감은 문신 등 풍기는 인상부터 기괴했다. 그는 또 80년대를 풍미한 팝스타 마돈나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악동 기질에 있지 않았다. 


그는 리바운드를 잘 나꿔챘다. 농구에서 리바운드는 공격자에겐 또 한 번의 공격기회를, 수비자에겐 역습 속공 찬스를 만들어준다. 농구의 승부는 사실상 리바운드 싸움에서 갈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코트에서는 늘 리바운드 다툼이 치열하다. 


로드맨은 이토록 중요한 리바운드에 재능이 있었다. 로드맨이 나꿔챈 리바운드는 피핀-조던의 손을 거쳐 골로 연결됐다. 조던-피핀 콤비 플레이는 로드맨의 손끝에서 시작됐던 셈이다. 실제 시카고 불스의 전력은 조던-피핀 콤비에 로드맨이 가세하면서 급상승세를 탔다. 


리바운드의 귀재 로드맨이 김정은의 초청으로 2월26일 북한을 방문했다. 미국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시절 농구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시카고 불스의 팬이라고 한다. 29세의 김정은이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걸 보니 보통 농구광이 아닌 것 같다. 


피는 못속인다고 했던가? 아버지인 김정일은 마이클 조던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메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2000년 북한 방문 당시 김정일에게 조던의 싸인이 담긴 농구공을 선물하기도 했다. 


한때 NBA는 북한의 장신센터 리명훈을 스카웃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적성국이라는 이유로 그의 NBA 진출을 불허했다. 그의 미국 진출설은 남북간 해빙무드를 타고 북-미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제스처였었다. 


시카고 불스 왕조의 주역이었던 데니스 로드맨은 농구광 김정은의 초청을 받고 북한에 갔다. 그가 이번 방문을 통해 리바운드 대신 북-미 화해의 물꼬를 터줄 덩크슛을 작렬시켜주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