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의한 보복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스탈린(1879~1953)은 누구에게나 존경 받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두려워했던 인물이었다. 반면 트로츠키(1879~1940)는 학식과 언변이 뛰어났다. 그런 트로츠키에게 그루지야 출신의 촌뜨기 무식쟁이는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이에 스탈린은 앙심을 품고 트로츠키에게 날을 세웠다. 스탈린의 보복은 비단 그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트로츠키에겐 각각 딸과 아들이 두 명씩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두 명의 사위와 네 명의 외손자들은 시베리아 추방뒤 실종됐다.
* 스탈린(1879~1953)
트로츠키는 스탈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는 멕시코 외무장관에게 이 같은 편지를 썼다.
"스탈린은 제 아내와 하나 남은 손자 녀석만 빼고 내 가족을 전부 몰살해 버렸습니다".
트로츠키의 마지막 망명지는 멕시코였다. 그는 그곳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정말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보복이었다.
* 트로츠키(1879~1940)
스탈린은 트로츠키란 이름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오로지 권력의지로 똘똘 뭉친 야심만만한 전략가가 자유로운 지성과 탁월한 언변으로 전세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신을 고취한 혁명가를 시기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스탈린은 권좌에 오르자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비단 드러난 정적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정적마저 남김 없이 제거해 버렸다.
스탈린은 이때 숙청대상들에게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누구든 트로츠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스탈린으로부터 화를 면치 못했다.
20세기 초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벌어진 정치보복극은 대한민국에서 재현됐다.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큰 열등의식을 가진 것 같아 보였다. 한편 지배세력은 노무현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해온데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저들은 일단 정권이 넘어오자 노무현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혹한 보복을 가했다. 결국 노무현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한편 검찰은 노무현의 가족들에게 몸서리쳐질 정도로 해코지를 했다. 노무현과 뜻을 같이 했던 모든 이들에겐 '친노'라는 딱지가 붙었다. 실제 노무현의 후광에 빌붙어 제 잇속 차린 인사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를 친노라고 봐야할지 개념정의가 모호했다. 하지만 개념이야 어떻든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친노라는 딱지는 주홍글씨나 다름 없었다. 스탈린의 망령이 대한민국에서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정치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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