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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아르고] 이란 인질사태, 그리고 작전명 아르고

아르고] 이란 인질사태, 그리고 작전명 아르고


이 지구상에서 미국이 눈엣 가시처럼 생각하는 두 나라가 있으니 바로 중동의 이란이요, 극동의 북한이다. 전에는 이라크까지 세 나라였으나 이라크는 미국이 손을 봐줬고 이들 두 나라만 남았다. 미국은 특히 이란을 아주 싫어해 이란을 언급할 때 마다 늘 '빌어먹을(fucking)'이란 욕설을 붙인다. 


미국과 이란이 아주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1979년 이슬람 근본주의 혁명 이전까지 이란은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교두보였다.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이고, 예나 지금이나 중동의 맹주다. 무엇보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하다. 또 이란산 석유는 깊이가 얕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석유를 채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미국은 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친미 세력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법을 즐겨 써먹었다. 칠레의 구리를 수중에 넣고자 피노체트를 사주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그 예다. 미국은 이란에다가도 동일한 수법을 썼다. 1951년 모사데크는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워 총리에 오른다. 그는 총리에 오르자 석유산업을 국유화시켰다. 이러자 미국은 군부 쿠데타를 사주해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팔레비를 국왕으로 세웠다. 사실상 위임통치였다. 팔레비 국왕은 미국을 등에 업고 온갖 전횡을 휘둘렀고 이와 정비례해 이란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라이벌 관계로 돌아서게 했다. 미국으로선 이슬람 근본주의자 호메이니의 집권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팔레비 왕조가 이슬람 혁명세력에 의해 무너지자 국왕은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미국으로선 팔레비의 망명을 승인할 수밖엔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음으로 양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제3세계 독재자들이 미국에 등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팔레비의 압제에 시달린 이란 민중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매일 같이 집회를 열고 팔레비를 내놓으라고 외쳤다. 민중들의 분노는 결국 인질극으로 번졌다. 시위대는 미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붙잡고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미국으로선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아르고'는 1979년으로 관객들을 데리고 간다. '아르고'는 CIA의 작전명으로 미처 시위대에 억류되지 않고 대사관을 빠져나와 캐나다 대사관저에 은신해 있던 6명의 직원을 구출했던 작전이다.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는 고증이 사실성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연출자인 밴 애플랙은 1979년 혁명 당시의 이란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면면, 그리고 당시 미국의 사회상을 꼼꼼하게 재현해 사실성을 높인다. 


CIA요원인 토니 맨데즈는 구출 전문가다. 이란에서도 여러 번 작전을 수행한 바 있어 이란 사정에도 정통하다. 이란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는 52명의 인질이 억류돼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6명은 시위대가 장악하기 전 대사관을 빠져 나갔다. 이란 혁명군은 대사관이 파기한 서류를 복기해 신원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신원확인 작업이 마무리되면 6명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6명의 목숨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토니 멘데즈는 TV를 보던 중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낸다. 영화 촬영을 명분으로 이란에 잠입해 6명을 공항으로 탈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얼핏 기발한 아이디어 같아 보이지만 혁명군이 장악한 공항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건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멘데즈 요원은 작전을 위해 이란에 잠입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은 작전을 취소한다. 그는 그럼에도 작전을 강행한다. 이러자 당시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 역시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에 이른다. [밴 애플랙은 민주당 지지자이다. 그래서인지 지미 카터를 아주 호의적으로 그린다]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인질 구출을 위해 영화를 찍겠다는, 사뭇 영화 같은 아이디어를 주제로 하고 있기에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아주 유쾌하다. 하지만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은 미국의 치부이자 세계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중요한 사건이다. 영화는 이를 의식해 시종 일관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이란 혁명군과 토니 멘데즈 요원 사이의 치열한 두뇌싸움에 있다. 혁명정부는 멘데즈 일행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에 맞서 멘데즈 요원과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상황을 재치 있게 모면한다. 토니 멘데즈 일행이 무시무시한 이란 혁명군을 유쾌하게 속이는 대목은 영화 '스팅'을 방불케 한다. 당시의 자료사진과 함께 지미 카터가 직접 당시의 상황을 회고 하는 엔딩 크레딧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잠시 역사로 눈을 돌려보자. 지미 카터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힌다. 독실한 침례교도인 그는 도덕주의 외교를 표방했다. 그는 특히 철권통치를 일삼은 데다 유신을 선포하고 영구 집권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와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 이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 사태가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은 도덕주의 외교의 실패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지미 카터의 발목을 잡았다. 


카터의 후임인 레이건은 전통적인 힘의 외교를 표방했고, 그가 집권하자 신냉전이 펼쳐졌다. 카터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밴 애플랙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장면 장면 마다 카터에 대한 연민이 묻어난다. 


정치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는 자칫 딱딱한 문체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 '아르고'는 감질 맛 나면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 20세기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사건을 곱씹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정치영화다. 적극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서 인질극이 벌어졌고 그해 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리고 1980년 대한민국에서는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이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세 가지 사건의 연결 고리는 바로 지미 카터였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이란 미 대사관 인질극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지미 카터의 도덕주의 외교의 실패로 받아들여졌다. 바로 이때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시해됐고 뒤이어 민주화 열기가 고조됐다. 미국은 권력 공백을 틈타 이란처럼 급진주의자들의 혁명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며 친미 성향이 강한 전두환이 해소시켜줬다. 미국이 전두환을 부추겨 12.12를 일으키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권력 공백기에 권력자로 부상했고, 지미 카터는 이를 사후 승인했다. 급진주의자들의 득세보다는 보수적인 군부의 권력 장악이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의 도덕주의 외교가 현실주의로 돌아섰고 그것이 곧장 한국의 상황에 적용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르고 (2012)

Argo 
7.9
감독
벤 애플렉
출연
벤 애플렉, 존 굿맨, 알란 아킨, 브라이언 크랜스턴, 카일 챈들러
정보
스릴러 | 미국 | 120 분 |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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