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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깨어 있지 못한 민중이 받을 것은....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자유의 외로운 씨를 뿌리는 사람인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죄 없는 깨끗한 손으로 

노예가 된 밭이랑에 

충실한 씨앗을 던졌다 -

그러나 나는 시간과 

좋은 생각, 노동만 허비했을 뿐....


풀이나 뜯어먹을지어다, 평화로운 민중이여 !

명예의 외침소리에도 그대들은 잠을 깨지 못하는구나,

자유의 은혜가 가축의 무리에 무슨 소용 있으랴? 

가축의 무리는 칼로 잘리고 털을 깎이고 하여야 한다. 

자자손손 언제까지고 그들이 물려받는 것이라곤

말방울이 달린 멍에와 채찍일 뿐이다. 


- 푸쉬킨, '씨 뿌리는 사람' (1823)



* 알렉산드르 세레게예비치 푸쉬킨(1799~1837)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러시아의 국민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흐르는 감성은 차갑디 차가운 모스크바의 공기를 녹일 듯 따스하기 그지없다. 


자유주의의 신봉자였던 그는 그의 작품세계에 자유에 대한 갈망을 투영했다. 그의 시 정신은 러시아의 청년 장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청년 장교들은 봉건적 짜르 체제를 타도하고자 비밀 결사를 조직한다. 그것이 바로 '쩨까브리스트' 즉 12월당이었다. 1825년 12월의 일로 12월에 거사를 일으켰다 하여 쩨까브리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청년 장교들의 거사는 꽃 피우지 못했다. 


유럽의 상황도 난망하기 그지없었다.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는 유럽을 보수우경화로 몰아넣었다. 보수 우경화의 주역은 바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였다. 


푸쉬킨의 조국 러시아는 한 발 더 나아가 메테르니히에게 신성동맹을 제안했고, 이에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독일은 1815년 신성동맹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푸쉬킨의 눈에 이런 일련의 사태는 자유주의에 대한 역행으로 보였다. 


위에 적은 시 '씨뿌리는 사람'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푸쉬킨 자신은 자유를 앙망하는 시인으로서 자유의 씨앗을 뿌렸지만, 유럽 정치의 난맥상과 민중의 무지로 자유가 꽃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고 말았음을 은유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그는 특히 깨어있지 못한 민중을 신랄하게 질타했다. 시 끄트머리의 "자자손손 언제까지고 그들이 물려받는 것이라곤 / 말방울이 달린 멍에와 채찍일 뿐이다"는 대목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신민으로의 삶에 만족하는 무지한 대중을 향한 냉소에 다름 아니다. 


1823년 시인의 질타는 2013년 이 땅에서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명예의 외침에도 잠을 깨지 못하는 민중이 비단 19세기 러시아 민중에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사반세기 전 청년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고 그 결과 민주화의 값진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이 땅의 몽매한 국민들은 '잘 살아보세'라는 신화에 도취돼 너무나도 소중한 한 표로 민주시민임을 포기하고 백성 되기를 자처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거리에서의 외침은 그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 시인의 질타처럼 깨어 있지 못한 민중이 받을 선물은 말방울이 달린 멍에와 채찍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