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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2013 대한민국, 겨울의 동화

2013 대한민국, 겨울의 동화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하면 아름다운 서정시를 얼른 떠올린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그대는 한 송이 꽃처럼', '로렐라이', '노래의 날개 위에' 등 그의 대표작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독일어는 발음이 무척 거친 언어다. 하이네는 이런 언어를 재료로 주옥같은 시를 빚어냈다.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은 그의 시에 곡을 붙여 아름다운 연가곡집을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사랑(Dichter Liebe)'이다. 


하지만 하이네가 초기의 서정시와 결별하고 부르조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 일련의 참여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사회비판적 시 활동으로 인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고 그곳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하이네가 부르조아 자본주의의 모순을 갈파한 건 그의 출생배경과 관련이 깊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은 부르조아 계급의 최상위층을 이루고 있었다.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그는 한 번은 제프헨이라는 신분이 미천한 여성과, 다른 한 번은 사촌 동생인 아말리아와 사랑에 빠졌다. 하이네는 아말리아를 극진히 사랑했다. 하지만 아말리아는 하이네를 동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도 그럴것이, 하이네의 집안은 부호 가문에 의탁하는 처지인데 비해 아말리아는 부호 가문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이네의 사랑을 뒤로 하고 부유한 농장주의 아들과 결혼했다. 


결국 그의 두 번에 걸친 사랑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더구나 두 번의 사랑은 짝사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이네는 자신의 시를 통해 자조적으로 '한 번의 짝사랑은 신과 같지만 두 번의 짝사랑은 바보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실연의 아픔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줬다. 그는 실연을 통해 부르조아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모순에 눈 떴던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하이네의 사고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줬다. 어느 하이네 전기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헤겔)의 냉철하고도 예리한 변증법은 마치 외과 메스 같아서 이 젊은 시인(하이네)의 영혼에서 그때까지의 두꺼운 낭만주의 지방질을 도려냈다.


변증법이 하이네에게 미친 영향은 그만큼 컸다. 이후 하이네는 일련의 참여시로 혁명정신을 고취시켰다.


하이네의 참여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아타트롤'과 '독일, 겨울동화(Deutschland : Ein Wintermärchen)'다. 18세기는 자유주의 혁명의 세기였고 혁명의 진원지는 프랑스였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봉건적 귀족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하이네는 조국 독일의 상황을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프랑스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 독일, 아득한 내 사랑이여,

그대 생각하면 거의 울음이 터지네 !

생기 가득한 프랑스는 우울하게 보이고,

경쾌한 이 민족은 내개 짐스럽네.


Deutschland, meine ferne Liebe,

Gedenke ich deiner, wein ich fast !

Das muntre Frankreich scheint mir trübe,

Das leichte Volk wird mir zur Last.


- 하인리히 하이네, '서기 1839' 중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열정을 시편에 담아냈다. '독일 겨울의 동화'는 자유주의 시민혁명이 꽃 피지 못하고 귀족적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독일의 현실을 서사로 담아낸 역작이었다.


이내 독일 정부 당국은 하이네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국은 그의 작품을 금지시켰고 시작(詩作) 활동도 못하게 막았다. 하이네가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이 소식을 듣고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는 일화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 정도로 하이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이렇듯 시인은 한 시대를 살며 그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시대의 고통을 짊어진다. 시인을 탄압하는 사회는 법질서가 무너지고 계급적 특권이 횡행하는 사회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나치가 하이네의 시를 불태우고 그의 작품을 금서로 지정한 대목은 무척 시사적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당국은 정권교체를 지지했던 137명의 젊은 문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는 어느 작가를 타겟으로 사이버 테러가 횡행한다. 한편 무지한 대중들 사이엔 '작가는 소설이나 시만 쓸 것이지' 하는 생각이 팽배하다. 


참으로 궁핍하기 그지없는 2013년 초입 대한민국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