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과 육당, 그리고 김지하]
춘원 이광수, 그리고 육당 최남선.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문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 말 친일로 돌아선 이들이다.
* 육당 최남선(왼쪽), 춘원 이광수(오른쪽)
두 사람의 친일 행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이들을 옹호하는 측은 두 사람의 친일행각은 적극적인 부역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장준하 선생은 1957년 사상계를 통해 '한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라면서 육당을 변호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이 임박한 시점에 친일로 돌아섰다. 역설적이게도 문명은 종말로 치달을 때 가장 융성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로마 제국과 프랑스 구체제(Ancien Regime)는 종말이 임박한 시점에 호사스러움이 극으로 치달었다. 일본 제국주의 역시 대륙 침략전쟁을 벌이는 한편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도발을 감행했다가 결국 허망하게 패망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춘원과 육당은 일본 제국주의가 영속할 것으로 보았다. 이에 그들은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내팽개치고 친일노선을 취했던 것이다.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서 취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문인의 글 한 줄은 민초의 정신을 파고드는 법이다. 일제의 패망을 내다보지 못한 안목의 결여는 지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난데없이 춘원과 육당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시인 김지하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김지하가 누구던가? 펜 하나로 폭압적인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시인 아니던가? 그가 남긴 '오적'은 엄혹했던 시절 문인의 기개를 보여줬던 기념비적인 역작 아니던가?
* 김지하(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그는 최근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한편 '쑥부쟁이'니 '깡통 저널리스트'니 하는 식의 해괴망측한 낱말로 진보진영을 질타하고 있다. 박근혜가 누구인가? 박정희가 남긴 핏덩이이자 과거 그가 맞싸웠던 독재권력의 망령을 등에 업은 정치세력의 수괴 아니던가?
한때 그의 '오적'을 읽으며 저항정신을 배웠던 문학도의 한사람으로써 그에게 '변절'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의 최근 행보는 실망을 넘어 인간적인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더욱이 그의 행보를 통해 춘원과 육당이 왜 변절했는지, 그 동기와 과정을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려 보게 된다.
춘원과 육당이 그랬듯 김지하 역시 역사를 보는 혜안이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문인임을 확인하게 돼 씁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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