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후(戰後)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두 작품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ie Blechtrommel)'이고 다른 하나는 지크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Deutschstunde)'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두 작품의 주인공인 오스카르 마쩨라트(양철북), 지기 예프젠(독일어 시간)은 나란히 정신병동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설정은 사뭇 의미심장한 은유를 담고 있다. 유럽의 선진국을 자처하는 독일이 '나치'라는 집단적 광기에 홀려 제정신을 잃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유대인을 몰살시키는 한편 무모한 침략전쟁을 일으켜 유럽은 물론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자아 정체성마저 철저하게 파멸시켰음을 꼬집고 있는 은유라는 말이다.
독일은 학계-문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지난 날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철저하게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일구어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제국원수였던 헤르만 괴링과 선전상 괴벨스, 부총통 루돌프 헤스 등 나치의 수뇌부는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평범한 소시민들 모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을 변호했다.
나는 독일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했으며, 독일인으로서, 국가 사회주의 당원으로서, 총통 각하의 충실한 부하로서 의무를 다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냉전이 나치 전범자들에 대한 단죄를 가로막았다. 종전 후 연합국의 對獨 정책은 '4D 정책'으로 일컬어 진다. 4D란 '탈나치화(de-Nazification)', '탈군사화(de-militarization)', '탈중앙집권화(de-central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였다. 하지만 소련의 팽창을 견제해야 했던 미국은 공산주의자라면 유대인만치 혐오했던 나치 협력자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은 아주 악질들만 제거하고는 나치 협력자들을 그대로 살려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옛서독을 재무장시키기에 이른다.
@ 다하우 유대인포로수용소. 기념비에 영어-독일어 등 5개국어로 새겨진 'Never Again'이라는 격문은 또 다시 나치의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소련이 점령한 동독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공산정권은 나치 잔당들을 철저히 숙청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뿌리 내렸던 나치의 망령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나치가 독일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정권을 잡았으며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新나치주의자들이 대부분 동독 출신이라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다시 귄터 그라스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오스카르 마쩨라트는 성장을 거부하다 전쟁이 끝나자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꿈을 안고 찾아간 서독 땅에서 그만 불구로 성장하고 급기야 정신병동에 수감되고야 만다. 오스카르 마쩨라트의 비틀린 성장은 종전 후 국제정치 논리에 의해 나치청산은 용두사미가 된 채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서독의 현실을 비꼬는 메타포어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 미래로 가는 초석
약간의 아쉬움은 남겼지만 그럼에도 서독은 과거사에 대해서만큼은 남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했다. 초대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는 '서방정책(West Politik)'을 통해 오랜 앙숙인 프랑스 등 서유럽과의 화해를 도모했다. 이어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Ost Politik)'을 통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관계 개선노력에 진력했다. 두 위대한 재상들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재정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동-서 화해는 있을 수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소유했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에 반영시켰다.
이런 과거사에 대한 열린 인식이 비단 정치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독일 사회 역시 다각도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일례로 독일 출신으로 나치의 만행을 혐오한 나머지 영국 국적을 취득했던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저서 '분단 독일의 정치사회학'를 통해 독일 사회 자체에 나치가 배태될 수 있는 환경이 내재돼 있음을 다각도로 분석한 바 있다.
지방자치로 눈을 돌려보자. 남독일의 경제 중심지인 뮌헨시는 다하우 유대인 포로 수용소를 그대로 보존해 놓고 있다. 뮌헨은 갈색혁명군 나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런 과거를 인식한 듯 다하우 수용소는 '지난 날의 과오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한다.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에 세워진 추모비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 다하우 유대인 포로수용소
den Toten zur Ehr,
den Lebenden zur Mahnung.
죽은 자들에겐 경의를,
산 자들에겐 경고를....
게다가 미국은 물론 프랑스, 폴란드, 소련 등 독일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 역시 독일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독일이 또 다시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국들의 도움은 독일에서 과거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조성되는데 일조했다. 일본의 우경화가 미국의 노골적인 지원에 힘입어 욱일승천하고 있는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독일의 사례는 아직도 유아적인 제국주의 논리에 사로잡힌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일본의 경우 과거사는 아직도 문제의식조차 형성되지 않은 실정인데다 과거사에 대한 문제를 꺼낼라 치면 사회적 이지메(いじめ)를 각오해야 한다.
문제가 여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50년간 꾸준히 힘을 축적한 극우주의자들은 급기야 과거를 무지개 색깔로 덧칠해 일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 든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대체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것은 서구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아시아 국가들과 그 국민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이 수행한 정의의 전쟁을 침략으로 몰아붙이려는 역사관이야말로 편향된 좌익사관이며 전사한 일본인 영령에 대한 모독이다'로 요약된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이 땅을 버리고 다른 땅을 찾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이런 이웃과 좋건 싫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진데 현실을 피해가기 보다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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