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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시인더러 시나 쓰고 소설가더러 소설이나 쓰라는 천박함에 대하여

독일의 낭만파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괴테, 실러, 하이네의 그늘에 가려 전공자를 빼놓곤 생소하기만 한 시인이다. 그의 생은 괴테(1749~1832)와 상당 부분 겹친다. 


흔히 알고 있기로 괴테를 낭만주의라고 하는데, 그가 낭만주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전적으로 낭만주의에 매몰된 것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차라리 독일 낭만주의는 노발리스에서 횔덜린으로 이어져 니체에게서 꽃피웠다고 봐야 더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각설하고, 횔덜린은 '빵과 포도주'라는 시에서 시인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노래한다. 




* 횔덜린


나는 알지 못하네, 이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Weiß ich nicht, und wozu Dichter in dürftiger Zeit?


시인은 시대의 산물이다. 횔덜린이 살았던 시기는 그의 조국 독일, 그리고 유럽대륙이 근대화로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근대는 비단 정치-경제 영역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문학-철학의 영역에서도 근대의 흐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근대 철학에서는 과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데아, 즉 초월적 영역에 대한 이론들이 논파됐다. 칸트의 불가지론은 아주 상징적인 이론이었다. 칸트는 드러내놓고 '물 자체(Ding an sich)는 인식할 수 없다'고 언명했다. 


시인들은 과거로부터 자연과 그 속에 내재한 신적인 그 무엇을 노래해 왔다. 하지만 근대의 영향으로 정신적, 특히 신적 영역은 자꾸만 인간의 사유 대상에서 제외되어 가고 있었다. 횔덜린은 바로 이런 근대화의 흐름 속에 시인의 역할을 고민했던 것이다. 


횔덜린은 대안으로 신의 존재를 되찾아주고자 했다. 여기서 신(Gott)이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이야기했던 이데아(Idea), 즉 정신세계, 초월적 사유의 세계를 의미한다. 횔덜린은 이런 정신적 영역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근대인들에게 돌아갈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횔덜린의 정신은 바로 니체에게 이어졌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언명을 근거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를 무신론자로 폄훼하기 일쑤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그가 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신을 죽이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앞서 이야기했던 정신세계, 초월적 사유의 영역을 이야기한다. 


니체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자꾸 축쇄돼 가던 정신적 영역이 끝내 사망했음을 목격했다. 그는 신의 주검 앞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일 뿐, 신을 죽인 것이 아니다. 그는 죽어버린 신에 대한 대체제로 초월적 인간(Übermensch)의 개념을 들고 나왔다. 바로 그것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역작이다. 


시인은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와 함께하며, 치열하게 시대적 고민을 풀어 해쳐 해나간다. 이런 고민은 최종적으로 작품의 형태로 나타난다. 횔덜린의 고백처럼 말이다. 비단 횔덜린뿐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가슴은 따스하지만 엉터리 화가, 즉 히틀러의 연설에 대한 경악으로 인해 시를 쓴다고 고백했다. 


지난 4년 동안 뜻있는 문인들과 작가들이 시대적 고민을 나누며 시대와 세상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러자 시인은 시나 쓰고, 작가는 소설이나 쓰라는 식의 반작용이 거세게 일었다. 시인으로 하여금, 소설가로 하여금 시대의 아픔을 토해내게 만든 장본인들이 특히 이런 소리를 거칠게 냈다. 


하여간 이 나라의 지배세력들은 천박한 걸 너무 드러내놓고 티를 낸다. 궁핍하다 못해 척박하기 그지없는 시대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까? 궁핍한 시대의 영혼들이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