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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이 되어

전병욱 사건이 남긴 것

전병욱 사건이 남긴 것


10월의 마지막 날, 삼일교회가 한 일간지에 사죄문을 실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이 더 크지만, 그래도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고 본다. 참 다행이다.


전병욱 사건은 기독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비단 전병욱의 변태적 성추행 행각뿐만이 아니다. 교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 밖에서는 전병욱을 맹신하는 신도들의 행태에 경악했다. 


사실 목사, 특히 교회를 부흥시킨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들이 비리를 저질렀을 때 대부분의 신도들은 대게 '우리 목사님'을 열렬히 비호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목사님이 칼로 사람을 찔렀다고 해도 난 목사님 믿는다'고 거침없이 내뱉는 성도들도 직접 목격했었다. 전병욱 사건이 불거졌을 때, 많은 삼일교회 성도들과 그의 설교에 영향을 받은 이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전병욱을 비호하던 사람들이 혈기 넘치는 젊은이였다는 사실이다. 순복음교회나 금란교회 같은 기성교회는 장년층 성도들의 비율이 꽤 높다. 이들 가운데는 가난했던 현실로 인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분들도 많다. 가난으로 인해, 또 갖가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한이 응어리졌지만 마땅히 해소할 곳이 없다가 '큰 목사님'의 설교에 감화 받아 그들을 열렬히 떠받들게 됐다는 말이다. 


물론 목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신도들의 맹신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 전병욱 @ 삼일교회 2010.05.


반면 전병욱을 열렬히 지지하고 비호했던 이들은 젊은이들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경제발전에 힘입어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고등교육의 혜택도 충분히 누렸다. 젊은 세대들의 특성을 반영하듯, 삼일교회엔 명문대 재학생, 대기업 직원, 공무원, 디자이너, 법조인, 언론인 등등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젊은이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이 청년들이 배우기를 못 배웠나? 아니면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주술적 예수 신앙에 현혹될만치 가난하길 했나? 예쁘고 잘 생겼고, 키도 크고 가정 형편도 좋은 젊은이들이 전병욱의 성범죄가 언론을 통해 불거지지니까 생전 처음 콜라 병을 본 부시맨들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전병욱 사건 통해 드러난 믿는 청년의 수준


삼일교회엔 다른 대형교회처럼 힘 있고 재력 있는 성도들이 많이 없다. 오로지 젊은이들이 많았고 젊은이들의 헌신에 힘입어 자생적으로 부흥했다. 전병욱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삼일교회의 젊은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감화 받아 자발적으로 교세 확장에 앞장섰다. 전병욱이 신도 80명 수준의 군소교회를 2만의 대형교회로 키웠다는 이야기는 젊은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을 간과한 것이다. 


이 같은 점은 교회 안팎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병욱 사건을 거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그리곤 냉소했다. '젊은이 교회의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됐었나'면서 말이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일본 극우파들이 써먹는 수법이 전병욱을 비호하는 데 동원됐다는 점이다. 중국계 미국인 역사가이자 작가인 아이리스 장은 1997년 '난징의 강간'이란 작품을 써 중일 전쟁 동안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했다. 그녀는 책 출판 후엔 일본 정부가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자 일본 극우들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 작가를 겨냥한 안티 블로그를 하나 개설한 뒤,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한편 작가의 신상을 털며 살해위협을 가했다. 결국 아이리스 장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행태는 전병욱을 옹호했던 한 신도에게서 발견됐다. 이 신도는 전병욱을 비판여론에서 보호하기 위해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리곤 전병욱 사건을 보도한 매체는 물론 전병욱을 비판하는 모든 글들을 가져와 멋대로 재단하는 한편 전병욱의 성범죄를 규탄하는 이들의 신상을 낱낱이 털어 공격을 가했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써먹는 수법이 이 땅의 기독교 신자에게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혀가 내둘러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병욱 사건이 드러낸 건 비단 전병욱 개인의 변태적 성취향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믿는' 젊은이들의 수준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아무쪼록 전병욱 사건이 남긴 상처가 아물어 건강한 새살로 돋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또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