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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오로라의 비극이 남긴 것



* Reuters. 2012.07.23


오로라의 비극이 남긴 것

영화적 상상력이 범죄의 원인일 수 없다


미국 콜로라도주는 미국인들이 은퇴 후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다. 평화롭기만 한 이곳이 지금 슬픔에 잠겼다. 지난 7월20일 덴버시 근처 오로라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이 사고로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현장은 화제작 '다크나이트 라이즈'상영관이었다. 현장이 어두운 극장인데다가 관객들이 범행을 영화 개봉 축하 퍼포먼스인줄로 착각해 희생이 컸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범인은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자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성명을 발표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배우와 스태프를 대신해 어이없는 비극으로 슬픔에 잠긴 오로라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희생자들의 면면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그날 밤 영화를 보기 위해 그 곳에 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위대한 예술의 한 형식으로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함께 보고 나누는 것은 매우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영화관은 내게 집처럼 소중한 곳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순수하고 희망찬 공간을 누군가 참을 수 없이 야만적인 방식으로 짓밟았다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과 비탄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끔찍한 사건으로 희생된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슬픈 마음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함께 할 것입니다.


오로라 총기사고는 미국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사고이기에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되면서도 총기 소지에 규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게 의아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 총기사고가 그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총기업계의 로비 때문이다. 업계는 미국총기협회(NRA)라는 로비단체를 내세워 총기소유에 제한을 가하는 모든 법안의 통과를 무산시켰다. 


지난 1999년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5명이 사망했다. 이러자 총기소지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NRA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려 총기소지 규탄 집회가 열리는 인근에 맞불집회를 여는 대담함마저 보였다. 당시 회장은 '십계’, '벤허’로 잘 알려진 명배우 찰턴 헤스턴이었다.


총기사고가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법적 책임과 보상문제가 뒤따른다. 그런데 총기업계는 법조 브로커를 통원해 이마저도 어렵게 한다. 존 그리샴은 1996년 자신의 소설 '사라진 배심원(Runaway Jury)'에서 이 같은 횡포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총기업계가 후안무치한 행태를 취하는 이유가 비단 업계 기득권만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총기소지를 헌법적 권리로 여긴다. 이 같은 인식은 총기업계의 배짱을 키운 자양분이 됐다. 또 미국의 정치-사회-경제 시스템도 한 몫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는 2002년작 '볼링 포 콜롬바인’에서 모든 시스템이 충격과 공포를 조장해 총기소지를 부추긴다고 일갈했다.


이런 사고가 터지면 일반 대중이나 평론가들, 심지어 근엄한 체 하는 정치인들이 영화의 폭력성을 일제히 질타하고 나선다. 하지만 이 같은 인식은 본질을 한참 비켜난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범죄를 부른다면 영화를 소비한 해당 소비자의 인식에 결함이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문제의 근원은 영화에 있지 않다. 총기소유에 무제한 자유를 두는 미국의 시스템, 바로 이것이 이번 총기사고의 원인인 것이다. 


총기사고로 희생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