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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송경용 신부



@ 2012.03.11.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송경용 신부

"나눔은 자신이 자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 


대한성공회 송경용 신부는 늘 낮은 자들의 삶과 가까이 있었다. 그는 대학재학 시절 '이념'에 경도돼 야학활동을 시작했다. 이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됐고 그의 삶에 매료돼 사제의 길로 접어든다. 예수와의 만남은 삶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예수와의 만남 이후 관악구 봉천동 '나눔의 집' 사역을 신호탄으로 줄곧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아 왔다.


그는 건강 악화로 6년 반 동안 영국에서 체류하다 지난 해 귀국했다. 귀국 이후의 활동은 더욱 왕성하다. 사제로서 '걷는 교회' 사역을 시작한데 이어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이사장을 맡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숙인에게 쉼터를 제공해주는 '아침을 여는 집', 자활의지를 가진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민, 고시원이나 여관 등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염가의 임대주택 및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눔마을' 등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풀뿌리 북돋우기 운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나눔은 국경마저 뛰어 넘었다. 그는 '꽃을 심는 손'을 통해 한창 학교에 다녀야 함에도 험한 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진료소, 직업센터, 한국어학당 등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송 신부는 "나눔은 자신이 자신을 향해 드리는 거룩한 제사"라면서 "예수께선 죽기까지 온 몸을 던져 나눔을 실천했다"고 강조한다. 사제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눔을 실천하는 그를 만나 인생역정을 들어 보았다. 


Q. 무엇이 사제의 길을 택하게 했나?


A. 제가 신학교에 진학한 때가 20대였습니다. 다니던 학교(연세대 건축공학과)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성직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지요. 


무엇보다 야학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어요. 너무나도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어떻게 하면 빈곤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뵈었지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역하시는 성직자분들을 뵈면서 서서히 교회를 알아 나갔지요. 이런 과정이 7~8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Q. 귀국 후 걷는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걷는 교회 사역의 취지와 목적은?


A. 영국에서 지낼 때, 매일 16km씩을 걸었어요. 당시 건강이 안 좋았었는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었죠. 그런데 4~5시간가량 걸으면서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저 스쳐지나갔던 풍경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더군요. 걸으면서 많은 걸 생각했고, 묵상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기도가 되더군요.


기독교에서 '걸음'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늘 걸으셨어요.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꾸려나갈까 생각하다가 걷는 교회를 구상하게 됐지요.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 교회의 현실도 고려했습니다. 교회가 성장에만 매몰된 탓에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걷는 교회는 이런 패러다임을 깨기 위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즉, 물신주의의 패러다임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보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단 말입니다.


Q. 표면적으로 볼 때, 이력이 극과 극을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현실이 입장에 따라선 다르게 보일 때가 많다. 이념에 경도되었을 때 바라보았던 '가난한 사람들'과 사제로 대한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나? 


A. 다른 사람이 볼 때 드라마틱한 면이 없지는 않아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면적으로 제 자신이 많이 변했어요. 지인들이 많이 놀라지요.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년 시절부터 늘 인간의 내면에 천착해 왔었어요. 물론 시대 상황, 나이, 환경에 따라 극적인 모습이 있었지요. 그러나 제 나름대로는 일관된 인생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의 집단입니다. 구체적 인간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제 뇌리 속엔 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들이 보다 친숙했지요. 가난한 사람들을 특정한 한 집단으로 인식해서 한 걸음 나가려다가도 커다란 확신은 없었어요. 말하자면 불철저한 주의자였고 재교육 대상자였지요.(웃음)


그러나 제 마음의 중심엔 인간 실존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 같아요. '무슨 큰 과업을 성취하겠다고 이러나'는 식의 고민 말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사람들 곁으로 가자고, 그 속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라고. 특히 전 늘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도 못한다"는 말을 마음속에 간직해 왔습니다. 이 말은 제 내면을 흔들었습니다. 


이런 실존적인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어요. 제일 매력적인 인물이었지요. 바로 예수였습니다. 전 예수를 통해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서의 예수 보다 예수의 삶에서 말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을 보세요. 예수는 한 손에는 정의의 칼을 들고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당시만 해도 하느님 나라의 비전은 혁명적 메시지였어요. 다른 한 편으로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본 일이 없었고 늘 이들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전 이념이나 사상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을 예수의 삶을 통해 해소했습니다.

   

Q. 사제로서, 그리고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이사장으로써 두 가지 일 가운데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가?


A. 전 두 가지 일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1년 365일의 날들이 사역이지요.


Q. 현재 사역하면서 어려움이 있다면?


A. 전 제 삶 자체여서 재밌습니다.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어요. 그리고 또 어려움이 있으면 어때요? 하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에겐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10년, 20년 가까이 현장에서 일한 분들이에요. 그분들에게 지원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래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정말 이 사회의 풀뿌리처럼 일하고 있는 분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하는 문제를 갖고 늘 기도합니다. 지금 제가 풀뿌리 북돋우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 운동은 바로 활동가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수행해 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Q. 최근 들어 봉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나눔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봉사는 좋은 일이에요. 최근 자선단체의 봉사활동에 거품이 많다고들 하지만 전 좋다고 봅니다. 가난한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봉사도 성숙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어요. 자기만족적인 차원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어려운 사람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봉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물론 이런 일도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 현지에 살면서 봉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로 나눔과 미래에서는 미얀마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 진료소, 직업센터, 한국어학당을 짓고 운영하는 '꽃을 심는 손(뺨쁄렛)'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Q.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A. 막노동으로 해요.(웃음) 집수리 일도 하고, 최근엔 거리에 무분별하게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철거하는 일을 맡았어요. 건강이 최우선이기에 잘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삶에서 멘토로 삼는 분이 있다면?


A. 제겐 어머님과 예수 그리스도 밖엔 없습니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제 인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머님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셔서 그 역할을 말없이 감당하셨지요.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음에도 말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낮은 데에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못 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지요.


한편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본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는 늘 이들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전 이념이나 사상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을 예수의 삶을 통해 해소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 본 인터뷰는 2007년 11월, 그리고 2011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재편집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