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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카이로스] 두 나라의 깨어 있는 양심이 나서자

카이로스] 두 나라의 깨어 있는 양심이 나서자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가 열린다. 10월의 셋째 주인 19일에도 수요시위는 여느 때처럼 열렸다. 


바로 이날 백발의 노신사가 이곳을 찾았다. 그 주인공은 일본 요코하마에 사는 일본인 엔도 토오루(遠藤 徹)씨. 79세의 엔도 씨는 야마구치 대학에서 30년간 철학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성심여대 철학과 문화연구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 일본 성공회 요코하마 교구에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국민은 잘못 없다. 잘못은 아베에게 있다”며 달랬다. Ⓒ luke wycliff


엔도 씨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소녀상이 없어지기 전에 이곳에 와서 사죄의 뜻을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엔도 씨는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엔도 씨는 시위에 참여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과거 일본과 지금의 나를 분리하지 않고 일본이 지난날 저지른 죄를 내 죄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나 역시 약한 인간일 뿐이다. 80~90년 전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자신들이 자행한 침략의 역사, 피지배국 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한 역사를 부정한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지난 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배상을 생략한 채 손을 맞잡았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역사 바로세우기에 실패한 셈이다.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할머니들 앞에 무릎 꿇으며 일본이 지난 날 저지른 죄과에 대해 사죄했다. 사진 왼쪽은 엔도 씨의 통역 및 수행을 맡은 대한성공회 유시경 신부 Ⓒ luke wycliff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할머니들 앞에 무릎 꿇으며 일본이 지난 날 저지른 죄과에 대해 사죄했다. Ⓒ luke wycliff


그나마 일본엔 양심적인 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엔도 토오루 씨도 이런 분들 중 한 명이다. 사죄의 뜻을 전해 받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국민들은 죄가 없다. 잘못은 아베가 했다”고 달랬다. 그럼에도 엔도 씨는 “자신도 책임 있다”며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한일 양국 정부가 실패한 역사 바로세우기에 두 나라의 뜻 있는 지성과 깨어 있는 시민들이 뜻 모아 나서야 할 일이다.  정부가 실패했다면, 국민이 나서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던가?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할머니들 앞에 무릎 꿇으며 일본이 지난 날 저지른 죄과에 대해 사죄했다. Ⓒ luke wycliff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고 있다. Ⓒ luke wycliff

▲ 일본인 엔도 토오루 씨가 1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사죄의 뜻을 밝힌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엔도 씨의 사죄문 낭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 luke wycliff


* 아래는 엔도 토오루 씨의 사과문 전문 


저는 일본인입니다.


일본이 과거에 한국(정확히는 조선국)의 여러분들께 셀 수 없을 잘못을 저지른 것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여, 일본인의 한사람으로 그것을 사죄하러 왔습니다.


첫째, 여러분의 나라를 우리나라(일본)의 ‘식민지'로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깊은 굴욕을 느껴왔을 것일지요.


또한 무수한 조선국의 사람들을 일본에 데리고 와서, 악질적인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제한 것에 대해서 통한의 마음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많은 분들이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그 분들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말을 잃고 신음하게 됩니다.


더욱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신 분들에 대해서 흐느껴 슬퍼하며 손을 모두어 사과를 드립니다. 일본인이 여성들을 지옥으로 몰아낸 이 극악무도한 행위를 생각할 때, 저는 몸이 떨립니다. 작년 12월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가 성립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도록 요구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은 다시 한 번 일본 정부가 위안부 분(할머니)들에게 진실로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느낍니다.


사실 한국의 위안부 지원 재단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죄 편지를 쓰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10월3일 국회 회의 중에 "우리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동상)'은 일본이 철거를 요구할 성격의 사안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정말 진심으로 손을 모아 사과했을 때, 그에 대해 위안부 분들로부터 그 성의를 받아들여 철거하다고 해야 순리에 맞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일본 국민 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제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저는,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인 이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최소한 일본 국민이 과거에 행한 무수한 폭력과 잔학에 대해, 한 사람의 일본 국민으로서, 양심에 이끌려 이 곳 한국을 찾아뵙고,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난을 조금이라도 더 제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면서, 또 일본 국민의 죄책을 제 자신의 것으로 하며,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서 손을 모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2016년 10월 19일

엔도 토오루


[2016.10.19.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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