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경이롭다면서 생명 해치는 사람들
[포토 에세이] 장재천 이야기
2016년 새해가 밝았는가 싶더니 어느덧 4월로 접어 들었습니다. 3월부터 봄이 이르다 싶었는데 4월이 되기 무섭게 날씨가 무덥게만 느껴집니다. 따스해진 날씨 덕분에 말 그대로 봄이 성큼 다가왔고, 산과 들은 봄의 빛깔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기보다 봄 기운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카메라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 만개를 준비하는 벗꽃. ⓒ luke wycliff
▲ 충남 천안시 불당동 장재천변의 매화나무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 luke wycliff
▲ 흰 빛깔이 아름다운 조팝나무. ⓒ luke wycliff
▲ 벗꽃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 luke wycliff
제가 사는 곳은 천안시 불당동입니다. 원래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2년 전 아산이 고향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엔 고향을 등진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울과는 달리 여유롭게 일상을 보낼 수 있었고, 그래서 이곳으로 내려오기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집앞엔 장재천이란 이름의 개천이 흐르는데, 전 아침마다 천변에 난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확실히 장재천변을 걷고 있노라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낍니다. 천변엔 개나리, 매화, 벗꽃, 서양 민들레가 각각 노랑-분홍 빛깔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꿀벌들은 꽃가루를 뒤집어쓰다시피 함에도 꿀을 빨아 들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제가 가진 카메라가 비록 고가의 제품은 아니지만, 이 카메라로 발 밑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 천안시 불당동에 흐르는 장재천. 천변에 심은 벗꽃은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렸고, 꿀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빨아 들인다. ⓒ luke wycliff
▲ 꽃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꿀벌. ⓒ luke wycliff
전업 사진가와 생활 사진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한 번쯤 카메라에 생명의 움직임을 담고 싶어하는 이유도 생명의 경이를 직접 느끼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사진가들의 행태가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새 사진을 찍기 위해 새끼 새를 볼모로 붙잡아 어미 새를 유혹한다든지, 자신이 담은 희귀식물을 다른 이들이 담지 못하도록 촬영 후 아예 현장을 훼손해 버리는 행태는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습니다.
심지어 장국현이라는 원로 사진작가는 사진촬영에 방해된다며 220살 먹은 금강송을 베어낸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분은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회를 열기위해 법정 공방을 벌인다고 하니, 도무지 그 속을 알길이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배우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유명 사진잡지인 <라이프>지에서 필름을 관리해온 주인공 월터 미티는 사진가 숀 오코넬을 찾고자 모험을 떠납니다. 월터는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 언덕에서 그와 마주칩니다. 숀은 눈표범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잠복하고 있었는데, 월터가 그곳을 지나간 것입니다.
숀은 미티에게 일단 자리를 비켜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눈표범이 지나갔음에도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월터는 이 광경을 보고 의아해 합니다. 숀은 '언제 찍을 것이냐'라고 묻는 월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 찍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좋은 순간을 보면 때로는 그 순간에 머물러 싶어지거든."
▲ 봄을 맞아 서양 민들레 역시 노랑 꽃망울을 터뜨렸다. 벌꿀은 온 몸에 꽃가루를 뒤집어 썼음에도 아랑곳 없이 꿀을 빨아 들이고 있다. ⓒ luke wycliff
▲ 벗꽃이 꽃망울을 터뜨리자 꿀벌이 주위에 모여들며 부지런히 꿀을 빨아들이고 있다. ⓒ luke wycliff
처음 카메라를 접했다면 굉장한 '무엇'을 찍어보겠다는 호기가 발동합니다. 이런 열정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의 주변에서, 아니면 자신의 발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유심히 살펴 보기를 권합니다.
이를 통해 생명의 경이를 먼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찍고자 하는 주제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든 문제점들도 따지고 보면 사진가들이 좋은 '그림'에만 집착했지 생명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생기는 일들입니다.
제가 지금 찍어 올리는 사진은 그닥 '임팩트'가 없는, 주변에서 흔히 눈에 띠는 풍경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전 너무 행복합니다. 제 발 밑에서 펼쳐지는 작디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이 작은 생명들에게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습니다.
"참 좋았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오마이뉴스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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