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3/5)은 예수의 고난을 되새기는 사순절의 시작이었다. 예수의 수난 당하심,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은 그리스도 신앙의 백미다. 그리고 이 백미의 단초는 가롯 유다의 배반에서 비롯됐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등 공관 복음서의 기자들은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를 로마 식민당국에 팔아 넘겼다고 기록한다. 당시 은 30냥이면 하찮은 돈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서 기자들은 굳이 예수의 몸값을 구체적으로 기록했을까? 바로 가롯 유다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 카라바지오 作, <잡히신 예수>
예수는 공생애를 통해 가난한 자, 약한 자, 병든 자가 주인되는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설파했다. 동시에 당대 종교권력인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즐기며 기존 질서의 전복을 시도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불경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쉽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대중이 구름 같이 운집했기 때문이었다. 가롯 유다는 이들에게 단돈 은 30냥에 예수를 팔아 넘긴 것이다. 로마 제국과 종교권력자들은 반색했다.
지금 이 나라엔 자신의 양심을 파는 목회자, 학자, 언론인들이 넘쳐난다. 망국적인 4대강 사업,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 지켜야할 소중한 국토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지난 정권에 의해 마음껏 훼손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런 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권력을 칭송하는 대목은 경악스럽다. 사순절 시작 바로 다음날, 국가조찬기도회란 행사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한 목회자가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전 세계에서 이토록 훌륭한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은 100%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찬양했다. 권력의 도덕성 여부를 떠나 이런 설교는 목회자로서 부적절하다. 게다가 이토록 훌륭하다는 여성 대통령 통치 하에 약자들은 절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목회자가 하느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약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올바른 지식으로 사회를 일깨워야 할 목회자, 학자, 언론인들이 양심을 파는 이유는 바로 '돈'이다. 즉 자신들의 기술을 악용해 정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대가를 챙긴다는 의미다. 이 자들이 권력자의 귀를 긁어주고 억만금을 받는다면 차라리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영혼 팔아 얻는 이득은 사실 쥐꼬리만큼이다. 이 자들은 이 쥐꼬리만한 이득을 주워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유다는 뒤늦게 나마 메시아를 팔아넘긴 어리석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에 겨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이 나라의 영혼 없는 좀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인생들이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개장터에 가면.... (0) | 2014.03.25 |
---|---|
남원 칼, 그리고 여자 대장장이 (0) | 2014.03.24 |
다시 한 번 삼성을 생각한다 (0) | 2014.02.24 |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남긴 것 (0) | 2014.02.18 |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0) | 2014.01.05 |